지상파에 예능과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SBS <짝>은 남녀 커플을 만드는 리얼리티 쇼지만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있고, 지난달 22일 시작한 MBC <커버댄스 페스티벌 K-POP 로드쇼>(이하 < K-POP 로드쇼 >)는 스스로를 예능과 다큐가 결합된 ‘엔터다큐’로 명명하기도 했다. 예능 PD와 교양 PD가 함께 만든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하 <정글의 법칙>)은 개그맨 김병만과 류담, 제국의 아이들 광희, 리키 김의 실제 아프리카 생존기를 담기도 했다. 예능 PD와 교양 PD가 함께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임재범을 필두로 만들어진 MBC <우리들의 일밤> ‘바람에 실려’ 역시 미국에서의 음악 여행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으로 임재범을 중심으로한 여행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리얼’이란 다큐멘터리의 힘
다큐와 예능의 결합은 연출을 최대한 자제, 다큐멘터적인 요소를 통해 ‘리얼함’을 높인다. <정글의 법칙>의 박두선 CP는 “지금 방송되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더 극한 상황을 주고 ‘리얼’을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장소만 선정하는 등 최소한의 설정만 정하고 아프리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프로그램의 방향을 쉽게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설정 외에는 인위적인 연출을 자제하는 다큐멘터리의 속성이 프로그램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 <정글의 법칙> 1회에서는 김병만과 일행들이 베이스캠프, 음식 등 기본적인 것도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실제로 이들이 집을 만들고 음식을 구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출연진의 제한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가 출연 연예인들의 캐릭터나 진행 능력이 중요하다면, 다큐가 들어간 예능은 이런 부담이 적다. < K-POP 로드쇼 >의 이흥우 PD는 “고정 출연진인 연예인의 힘이 프로그램에 크게 작용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은 가능성이 다양해진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소재에 맞는 출연진을 섭외하면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사실성이 확보되고, 캐릭터적인 재미는 다양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대응하는 출연진의 모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 박두선 CP 또한 “(유명한 연예인은 없지만)다른 것보다 김병만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했다. ‘바람에 실려’ 역시 임재범이 중심이지만 김영호, 이준혁 등 평소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연예인이 출연하고 있다.
지상파 예능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을까
다큐적인 느낌을 강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새로운 장르는 아니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Mnet < BIGBANG TV >, < 2NE1 TV > 등 예능적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출연자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이 이미 성공을 거둔바 있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처럼 리얼 버라이이어티가 수년간 대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지상파가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예능 프로그램을 주요 콘텐츠로 시도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박두선 CP는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스튜디오를 벗어나고 대본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지만 출연자들끼리 주고 받는 부분에서 재미가 많이 나왔다”며 “<정글의 법칙>의 경우 정글이란 외적 요소를 주면서 낯선 사람들과의 교감처럼 기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주기 힘든 신선함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SBS가 예능국과 교양국을 통합,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새로운 포맷에 대한 필요성과 “낯선 환경에서 일을 하는 노하우는 아무리 예능 PD가 생각을 많이 해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부분을 활용한다”는 박두선 CP의 말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점점 범위를 넓히며 장르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만남에 불안한 점도 적지 않다. ‘바람에 실려’ 기획을 맡은 김구산 PD는 “기본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시청자들께 즐거움과 음악이라는 감동을 주고 싶었지만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음악 여행이라는 신선한 기획과 달리 다큐적인 속성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어색한 부분도 있다는 것.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방식에서 다큐멘터리와의 결합을 통해 또다른 ‘리얼’을 추구하는 몇몇 예능 프로그램의 행보는 예능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 오디션 프로그램, 토크 쇼 모두 포화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다큐멘터리와 만난 예능 프로그램은 예능의 새로운 영역을 다질 수 있을까.
10 아시아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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