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에이스들의 맞대결은 장원준의 승리로 돌아갔다. 개운한 맛은 없었다. 직구의 구위, 제구 모두 무난했지만 4회가 아쉬웠다. 박정권에게 솔로 홈런을 내준 뒤 2점을 더 헌납했다.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홈런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구는 급속도로 흔들렸고 투구 수는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결국 장원준은 5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불펜진의 부담은 그만큼 가중됐다.
김광현은 공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돼 있었다. 투구 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을 자주 체크했다. 스피드에 대한 부담을 스스로 노출한 셈이다. 정상호의 미숙한 리드도 여기에 한몫했다. 변화구 위주의 볼 배합을 요구해 김광현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썩어도 준치'였다. 탁월한 위기관리를 뽐내며 3.2이닝을 자멸하지 않고 버텼다.
롯데는 1차전에서 16안타를 때리고도 패했다. 두 가지 장면이 아쉬웠다. 1회 1사 만루와 9회 1사 만루에서 각각 병살타에 그친 강민호와 손아섭이다. 한 번만 기회를 살렸다면 롯데는 분명 경기를 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9회 무사 1, 3루에서의 대타 작전도 빼놓을 수 없다. 양승호 감독은 우투양타인 양종민 대신 우투우타 손용석을 대타로 세웠다. 손용석은 그간 찬스에서 강점을 보였다. 하지만 SK 투수는 우완 엄정욱이었다. 우투좌타인 이인구가 대신 타석에 섰다면 어땠을까. 1, 2루 사이 잡아당기는 타구만 때려도 롯데는 점수를 낼 수 있었다. SK가 좌완 정우람을 투입시켰다면 그때 손용석을 내보내도 늦지 않았다.
양승호 감독의 조급함은 8회에도 드러났다. 2사에서 안타로 출루한 전준우는 이내 도루를 시도했다. 진루에 성공했지만 사실 위험한 작전이었다. 다음 타자는 이대호였다. 전준우는 상대의 거르는 피칭으로 보다 쉽게 2루를 밟을 수 있었다. 실수를 덮은 건 이만수 감독대행의 성급한 판단 때문이다. 그는 정대현에게 정면승부를 지시했다. 간판타자의 방망이가 살아나면 팀의 사기는 크게 오르게 돼 있다. 이대호는 결국 안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SK는 이후 두 차례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야 했다.
롯데는 1차전에서 불펜 소모가 많았다. 이는 임경완의 6회 투입이 부른 화근이다. 임경완은 왼손타자와의 대결을 부담스러워하는 투수다. 고원준이나 크리스 부첵을 내보냈다면 어떻게든 2, 3이닝을 막아내 불펜을 좀 더 아낄 수 있었다. 아쉬움은 남은 경기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양승호 감독은 약한 투수력에도 불구 최종 명단에 투수 이름을 11명 올렸다. 12명을 올린 SK보다 1명이 더 적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불펜의 무게는 SK 쪽으로 더 쏠리게 됐다. 2차전에서 송승준이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롯데는 무척 힘든 경기를 펼칠 것이다.
정우람의 호투로 SK의 불펜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정상호의 투수 리드에 있다. 결승홈런으로 경기의 주인공이 됐지만 수비에서 자주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1차전에서 그는 무려 16안타를 내줬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불안은 투수진의 빼어난 구위 덕에 메울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는 다르다. 박희수, 엄정욱 등의 구위가 크게 떨어졌다. 김광현에게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주문한 리드만으로는 결코 롯데 타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