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싼 차 '나노' 안먹히네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모두가 돈이 안 될거라던 랜드로버는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된 반면, 불티나게 팔릴 것을 기대했던 소형차 '나노'는 안 팔리고 있다. 인도 최대 자동차기업 타타자동차의 라탄 타타(73) 타타그룹 회장이 고민에 빠진 이유다.
잠세지트 타타의 증손자인 라탄 타타는 1962년 타타스틸에 인턴으로 입사한 지 30년만인 1991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회사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타타그룹은 철강에서 통신ㆍ전자ㆍ화학ㆍ식품ㆍ제약에 이르기까지 8개 분야 114개 기업을 거느린 기업집단으로 발돋움했다. 타타 회장은 그룹의 중핵인 타타자동차를 글로벌 메이커로 세우겠다는 원대한 야심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그는 2008년 3월 미국 포드로부터 '손실덩어리'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30억 달러의 브리지론까지 받았다. 당시 애널리스트들은 한결같이 타타자동차가 포드도 실패한 JLR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서 "타타 회장이 경영감각이 결여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모건스탠리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였던 발라지 자야라난은 타타의 JLR 인수에 대해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비용만 드는 가치파괴적 인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타타 회장은 또 인도 내수시장을 겨냥해 보급용 초소형차 '타타 나노'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2009년 4월부터 판매를 개시한 나노는 기본형이 10만 루피(약 2000달러) 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였다. 가구당 평균 수입이 낮고, 스쿠터 보급률이 높은 인도 내수시장에서 처음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공략 목표였다. 타타자동차와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타타 나노가 새로운 시장영역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다들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한 JLR은 타타자동차 성장의 일등공신이 됐다. 지난 3월까지 한해 동안 타타자동차가 낸 순익 21억 달러 중 17억 달러가 JLR의 기여분이었다. 반면, '국민차'로 내놓은 나노의 판매는 형편없었다. 판매는 계속 하락세를 보여 9월에 전년동기대비 47%나 줄었다. 출시 당시 타타 회장은 연간 50만 대 판매를 호언장담했지만 2년이 넘은 지금 나노의 총 판매대수는 10만 대를 겨우 넘었다.
이런 역전이 벌어진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타타가 JLR의 회생에만 전력을 기울이면서 나노에 소홀했던 탓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나노 프로젝트에서 일련의 '실책'들이 있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높다. 생산 개시가 1년 넘게 지연되면서 홍보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경쟁업체들이 내놓은 동급 경차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마케팅 역시 문제였다. 타타 회장이 인도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자동차를 타고 싶어할 인도사람이 없다는 점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타타 회장은 뒤늦게나마 나노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을 벌이고, 중소도시에서 딜러십 확대에 나서는 한편, 인도 내 29개 은행과 제휴해 자동차 구입 대출 혜택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JLR의 성공이 나노까지 이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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