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과 관련해 국내 증권사 대표 12명과 초단타매매자(스캘퍼)들이 불공정거래 혐의로 대거 재판을 받고 있어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현행 관련법규로는 이들 증권사와 스캘퍼의 거래가 불공정한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법정에서 나와 관심을 모은다. '처벌의 근거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여서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5일 스캘퍼 박모ㆍ정모씨 등 2명에 대한 속행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 5개 증권사를 상대로 전용회선을 이용한 초단타매매를 통해 71억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됐다.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는 증인으로 출석한 금융감독원 김모 선임검사역에게 "만일 만기에 임박해 유동성공급자(LP)가 자사에 유리하게 호가를 정해 이익을 도모하려 할 경우 이를 제재할 규정이 있느냐"고 물었고 김씨는 "유가증권시장 업무규정이 5분 이내 유동성공급호가를 제출하도록 정한 것 외엔 관련 규제가 없다"고 답했다.
자본시장법 및 유가증권시장 업무규정에 따르면, ELW를 제외한 다른 증권상품의 경우 매도호가와 매수호가의 가격 차이(호가스프레드)가 2~3%를 넘어서면 증권사 등 LP는 5분 이내에 새로운 가격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ELW의 경우 호가스프레드를 증권사가 상장할 때 신고한 비율에 맡겨둬 2%에서 20%까지 제각각이다. ELW시장이 통상의 10배에 달하는 범위에서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재량을 증권사에 맡겨둬 거래의 공정성을 판단할 기준이 시장에서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재판부가 지적한 셈이다.
박씨 등의 변호인도 검찰이 기소한 자본시장법 178조 1항의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는 이번 재판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및 금감원에 따르면, 기본자산의 변동을 확인하고 방향성 투자가 이뤄지는 다른 파생결합증권과 달리 ELW는 대부분 기본자산 변동에 따른 매매전략마저 알고리즘화한 전산프로그램에 의존해 초단위로 수만건이 거래되는 형태로 이뤄진다.
관련 규정엔 거래방법에 대해 문서, 전화, 전자우편, 컴퓨터 그 밖에 유사한 전자통신의 방법에 의하면 되고, 전자통신에 의할 경우 보안장치를 경유하도록 제한할 뿐 다른 제한이 없다. 이미 유럽 선물옵션 시장 등에서 전용회선의 제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전용회선에 의한 거래를 불공정거래라고 지목할만한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 2005년 12월 ELW시장이 개설된 이래 증권사의 호가제출범위는 평균 6%대에서 이뤄져 타상품과 큰 차이가 없다"며 "20%에 달하는 경우는 증시 불안정이 심화되는 등 예외적인 경우만 수초~수분에 걸쳐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분기별로 LP에 대한 평가자료를 통해 F등급을 받을 경우 신규 상장이 불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초당 2만~15만건의 거래가 이뤄지는 ELW시장 특성상 예외적인 수초만으로도 수억원의 손익이 오가게 된다.
검찰은 앞서 금융소비자연맹 등 개미투자자들이 증권사와 스캘퍼의 전용회선을 통한 거래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ELW시장이 초래하는 금융소비자 피해를 우려해 증권사와 스캘퍼에 대해 기소에 나섰다. 검찰은 또 H증권 등 전직 증권사 전산팀 직원 출신으로 이뤄진 초창기 스캘퍼들이 전산화된 프로그램으로 대부분의 거래가 이뤄지는 ELW시장에서 사실상 자신들이 설계한 프로그램을 역이용할 소지에 대해서도 우려한 바 있다.
그러나 스캘퍼들과 증권사의 거래를 불공정거래라고 단정지을 기준이 관련 규정 어디에도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법정에서 사실상 '확인'되면서 '부정한 수단'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를 공산이 커졌다.
금감원 등 감독당국도 ELW시장에서의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실상 '개미는 들어오면 위험하다'고 알리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달 27일 시장 추가 건전화 방안을 통해 1500만원의 기본예탁금 규정과 ELW보유계좌에 대한 인출제한을 업무규정에 추가했다. ELW거래를 하려면 일단 1500만원을 예탁해야하고 인출도 이 기본예탁금을 초과하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도록 해 사실상 개미투자자의 진입이 어려워졌다. 전산화된 프로그램에 의해 증권사와 스캘퍼가 초단위로 수만주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기본자산 변동을 확인하고 뒤늦게 몇백주를 거래하려는 개미투자자가 시장에 들어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ELW는 가장 높은 5단계의 위험을 지닌 금융상품으로 투자권유시 1시간반에 달하는 교육의무, 금감원에서 오래도록 주장해 신설된 기본예탁금 제한, 분기별 LP평가에 따른 추가상장제한 등 삼중으로 감독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ELW시장은 증권사와 스캘퍼가 초단위로 경합을 벌이는 매우 위험한 시장으로, 이들의 거래가 어디까지 공정한지는 불분명한 채 개미투자자들이 들어서기엔 곤란한 영역인 셈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