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소비는 위축…큰손 외국인들 한국쇼핑 열올려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일본인ㆍ중국인 고객들이 환율 덕분에 씀씀이가 더 늘어났어요. 에센스 2개 살 거 3개 사가는 식이죠."
최근 환율이 지난 8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면세점 소비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내국인들의 면세점 소비는 위축된 반면 일본인ㆍ중국인 관광객 등 큰손들은 '저렴'해진 한국 쇼핑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는 개장을 10여분 앞두고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게이트를 열자마자 이들이 우르르 몰려든 곳은 10층 면세점.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루이뷔통과 프라다 매장 앞에는 15~30m가량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지난 주에 중국인 고객들만 일평균 800명~1400명가량이 찾았어요. 오늘은 등록된 중국 단체 여행객들만 2000명이 방문할 예정이네요." 몽블랑 직원은 "최근 중국인 관광 단체 고객들이 크게 늘어나 주말에는 장사진을 이룬다"며 "중국인 객 단가는 500달러가량"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166원, 엔화는 1521원을 기록해 지난달 말 대비 각각 9.5%, 10.3%씩 급등했다. 이에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쇼핑이 더욱 저렴해졌다.
불가리 매장 직원은 "일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한국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게 30%가량 더 저렴하기 때문에 반지 한 개 살 거 시계까지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내국인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면세점 쇼핑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명품 시계 브랜드인 태그호이어 매대 앞에는 40~50대 중국인 남성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격을 셈했다. 개당 2000달러를 호가하지만 손목에 차보더니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내국인들은 슬쩍 구경만 할 뿐 꺼내달라는 말조차 떼지 않았다.
매장 직원은 "원화가치가 떨어져서 이 시계 같은 경우, 지난 달 200만원대였다면 지금은 220만원정도 한다"며 "중국인들의 구매는 여전하지만 내국인들의 구매는 주춤해졌다"고 말했다.
가을을 맞아 본격적인 웨딩 시즌이 시작됐는데도 면세점을 통해 반지, 시계 등 혼수를 준비하는 경우도 크게 줄었다.
면세점 주얼리 매장 관계자는 "한창 결혼시즌인데도 내국인 고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환율 때문에 부담을 느껴 이번 주 들어 30~40%까지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날 면세점을 찾은 최수민(30)씨는 "개천절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해외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동안 사고 싶었던 액세러리와 화장품을 사러왔다"며 "백화점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면세점을 찾았지만 환율이 너무 올라 가격 메리트를 체감할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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