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솔 기자]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됐던 전세계적 금융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코스피가 연중 최저치까지 추락한데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금융기관들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면서 이들이 아시아 신흥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점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높이는 요소다. 2008년 금융시장의 변동경로를 되짚어보며 현재 시장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시장 전문가들도 부쩍 늘었다.
지난 23일 코스피는 전날 보다 103.11포인트(5.73%) 급락한 1697.44로 거래를 마쳤다. 연중 최저 지수였을 뿐 아니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가 1700선을 하회한 것은 지 난해 7월8일 이후 무려 14개월만이다. 이날 코스피는 100포인트 넘게 하락하면서 올 들어 두 번째로 큰 낙폭을 기록했다. '100포인트 이상 폭락'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부터 촉발된 8월 글로벌 '패닉장세' 때 에도 단 한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검은 금요일'을 보낸 코스피는 지난 한주 무려 전주 대비 142.66포인트(7.75%) 하락했다.
채권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외환시장의 높은 변동성 역시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의 장세 진단을 더욱 비관적으로 만든 것도 원·달러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9월 들어 단 나흘을 제외하고 연일 오름세를 보이며 장중 1200선 턱밑까지 치솟기도 했다.
26일 이영원 HMC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반영한 최근 시장의 등락 양상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극심했던 혼란의 초기 국면과 비슷하다"며 "특히 외환시장이나 국채에 대한 CDS스프레드 추이는 2008년 당시와 형태와 수준이 거의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는 국채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정책적 대응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을 본격적인 위기가 진행 중 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급등하기 시작한 원·달러 환율의 영향으로 IT와 경기소비재 등이 3~4개월 동안 시장에 비해 선방하고 소재 업 종은 시장에 비해 부진했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2008년 3월과 9월로 거슬러 올라갔다. 2008년 3월은 미국 금융기관들의 이상신호가 목격되며 경기 둔화가 진행되던 약세장 속 반등장(베어마켓 랠리) 국면이었고 9월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2008년 3월과 현재 모두 위기 발생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한 첫 번째 국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2008년 9월에는 주식과 차별화된 흐름을 보이며 상승세를 이어가던 국제 상품가격까지 빠지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도 국제 상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코스피가 2008년 3월처럼 소강국면을 맞이할 지, 2008년 9월처럼 추세적 하락장을 맞이할 지 여부는 유럽 각국의 정책 공조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10월 중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기능 확대에 대한 유로존 국가들의 의회승인 과정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1~2주 내에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급 결정이 이뤄지고 재정안정기금에 대한 의회 승인도 완료된다면 코스피는 2008년 9월 보다는 3월의 패턴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008년 3월 코스피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잡음이 잦아들며 두 달 동안 300포인트 이상 상승한 바 있다.
이솔 기자 pinetree1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