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윤미 기자] 성공적인 창업자가 CEO직을 떠나는 것은 기업의 큰 변화를 예고한다. 회사 창립부터 이념과 비전을 만들어온 ‘전설적 창업자’가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항해하는 배가 돛대를 잃는 것에 비견되곤 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사임이 그러하다. 잡스는 1976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매출 부진을 이유로 1985년 쫓겨났다. 창업자를 잃은 애플은 10년 만에 ‘6개월 내 파산’ 선고를 받았지만 1997년 잡스가 복귀하면서 시가총액 1위로 거듭났다.
이렇듯 창업자의 '전설'을 보여준 잡스가 애플의 두 번째 사임을 결정했다. 차기 CEO로는 잡스가 최근 두 달간 병가로 자리를 비웠을 때, 회사 운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팀쿡을 지목했다.
또 한번 창업자를 잃은 애플의 미래를 짊어진 팀쿡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전설적 인물이 떠난 뒤’ 제하의 기사를 통해 팀쿡 앞에 놓인 길은 평탄치만은 않을 듯하다고 보도했다.
FT는 역대 유수의 기업들은 성공적인 창업자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차기 CEO들이 이를 계기로 또 한번의 도약을 이뤄내는가 하면 반대로 기업 이념을 잃고 회사의 명성을 떨어뜨린 기업이 있다고 설명하며 디즈니, 월마트, 포드, 마이크로소프트 4개 사의 사례를 뽑아 소개했다.
◆디즈니 = 창립자 월트 디즈니의 비전을 외면해 몰락의 일로를 걷던 디즈니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개혁나간 CEO 덕분에 지금의 디즈니가 있을 수 있었다.
세계 어린이들에게 지난 90년 간 사랑받아온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킨 월트 디즈니는 20년 간 디즈니를 경영하면서 '환상의 나라'를 비전으로 애니메이션 세계를 창조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의 리더십을 넘겨받은 그의 형 로이 디즈니는 새 애니메이션 대신 영화 산업 진출을 택했다.
그는 1970년대까지 '프리키 프라이데이(Freaky Friday)', '마녀의 산(Escape to Witch Mountain)' 등 다수의 영화 산업에 도전하며 ‘라이브액션 가족 영화’의 시대를 열었으나 ‘월트 디즈니만의 마술 재창조’를 등한시 했던 것이 디즈니의 몰락의 원인이 됐다.
그러던 디즈니는 1984년 파라마운트사로부터 마이클 아이즈너를 영입하면서 애니메이션에 다시 포커스를 맞추고 디즈니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아이즈너 회장은 재임 20년 동안 디즈니의 비전을 기존의 아이들 취향의 만화영화스튜디오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룹'으로 바꾸는데 주력했다. 회사의 핵심사업을 디즈니랜드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바꾸며 1996년 ESPN을 인수하고 새로운 영화부문 자회사인 터치스톤 픽쳐스를 설립해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등 히트작을 다수 내놨다.
2005년 아이즈너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아이거 회장이 CEO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설립한 픽사(PIXAR)의 인수였다. 실제로 2006년 최대 경쟁사인 픽사를 74억 달러 인수에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지분을 확보하며 현재 디즈니의 최대 주주로 이사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월마트 = 월마트는 창립자의 신념에서 점차 퇴색된 기업 전략 때문에 비난을 사며 하락 일로를 걷고 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1962년 월마트 설립 이후 '매일 염가 판매(every day low prices)'와 같은 단순한 격언을 신념으로 삼고 운영해왔다.
그는 1998년 차기 CEO로 데이비드 글래스를 선택했다. 글래스는 '매일 염가 판매'란 영업 신념을 이어가는 한편 '대형쇼핑센터' 건립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월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적 고용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글래스는 지난 10년간 매출액 증가가 더디고 새 지점을 건설할 장소가 부족해지면서 '매일 염가 판매' 전략에서 벗어나 고급 점포를 리모델링해 값을 올리는 방식으로 매출 증진을 꾀했다.
이에 월마트를 찾던 손님들은 창업자의 신념을 버린 글래스를 외면했다. 현재 월마트는 전례 없이 9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하자 글래스는 창업자의 영업전략을 되찾아가기로 했다. 리모델링 프로그램을 줄이고 염가판매를 고수하며 홍보활동을 자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포드 = 미국 자동차 업체인 포드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방식 체제를 도입해 자동차를 대중화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그러나 1919년 헨리 포드의 아들인 엣셀 포드가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된 직후부터 포드는 미국 시장에서 하락 일로를 이어갔다.
특히 포드가 T모델의 검은색 자동차 생산만을 고수하던 것과 달리 가격, 색 등에서 다양성을 추구한 제너럴모터스(GM)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포드의 위상은 흔들렸다. 1933년에는 GM과 크라이슬러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기 시작했다.
1942년 헨리 포드의 손자인 헨리포드 2세가 이어받아 처음 한 일은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그는 전직 GM경영진들과 자동차 경험은 없지만 똑똑하고 젊은 육군항공대(AAC) 베테랑들을 영입했다. 이로 인해 포드는 1950년 크라이슬러를 제치고 미국 시장 내 2위 자리로 올라섰다. 이에 포드는 1956년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1990년 SUV 판매 실적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으나 2000년 파이어스톤 타이어 대리 리콜 사태 후, 큰 위기에 직면했다.
FT는 포드사가 미국 내 너무 많은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자사의 고급 브랜드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를 잇따라 인수·운영하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1999년 헨리 포디의 증손자 빌 포드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가 2006년 앨런 멀러리에게 회장직을 양도했다. 멀러리 회장은 곧바로 잉여 공장을 폐쇄하고 구조조정과 새 제품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런 개혁이 2008년 경제 위기 속에서도 포드의 성장을 도와 지난해 포드 영업이익은 지난 10년 동안 최고치인 66억 달러를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 =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의 바통을 이어 받은 사람은 스티브 발머다. 20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해온 발머는 2000년 빌 게이츠의 은퇴와 동시에 차기 CEO로 임명됐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대표명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머가 원활히 인수할 수 있는 환경은 쉽지 않았다. 특히 경쟁사인 애플의 음악, 휴대폰, 태블린PC 등 급변하는 혁신 앞에서 인수와 혁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국 MIT 슬로안 스쿨의 마이클 쿠수마노 교수는“빌 게이츠가 퇴임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당시 명성을 이어갈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꾸준히 일에 전념한다면 다시 명성을 회복할 날이 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크로스리서치의 리차드 윌리엄스 선임애널리스트는 "게이츠 시대에는 새 제품 개발을 통해 전세계를 변화시키는 과학기술 분야를 누리던 리더십이 특징이었다"면서 "반면 발머 시대는 전문적인 회사 경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2008년 6월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세입은 16% 가까이 올랐고, 수익은 약 31% 늘었지만 주가는 거의 그대로 머물고 있다.
윌리엄스는 "투자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빌 게이츠가 없는 지금, 애플의 태블릿과 휴대폰 시장을 뚫고 우뚝 설 수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윤미 기자 bong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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