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미국발 신용위기로 실물경제까지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작 해외수출 의존도가 높은 현대ㆍ기아차 내부는 조용하다. 실무진을 중심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 경영진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6일 현대ㆍ기아차에 따르면 지난 7일(한국시간) 미국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진 이후 경영진은 별도의 대책회의를 갖지 않았다. '등급 하향' 결정 직후인 8일 오전 1시간 30분간 이어진 기아차 K5 품질회의에서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신용'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양승석 현대차 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발 위기 관련해 최고경영진의 회의나 별도의 당부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역시 지난 주 가진 임원회의에서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에 집중하라"고 언급하면서 위기와 관련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룹 내부에서 '미국발 위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데는 위기에도 미국 현지 실적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미국 분위기를 파악했는데 판매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별 무리 없이 잘 나가는데 괜히 위기를 언급할 필요가 없잖냐"고 반문했다. 양승석 사장도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현대차 판매는 줄지 않을 것"이라면서 상황을 낙관했다.
현대ㆍ기아차는 가솔린 하이브리드차 출시와 함께 미국시장에서 '연비 좋은 차'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 위기에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내부에서는 섣부른 위기 발언이 자칫 오해를 부르고 실적 호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기'라는 단어가 일종의 금기어가 된 셈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최고 경영진이 '미국 위기'를 직접 언급한다고 해서 크게 득될 게 없다"면서 이 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수출팀과 현대차미국법인을 중심으로 자체 점검을 시작했다. 매장 방문객과 판매현황을 수시로 확인해 미묘한 변화에도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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