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산책]내년 대선과 386세대의 종말

시계아이콘01분 43초 소요

당신과 함께하는 충무로산책

[충무로산책]내년 대선과 386세대의 종말
AD

그 방에 들어갈 때 나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책걸상과 책장의 책, 방 한구석에 쌓아 놓은 서류철까지 모든 것이 똑같은 자리 똑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을 5센티미터쯤 열어둔 것까지 아침에 두고 온 그 풍경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게 날아가 버린 것이.

책걸상과 책장의 책, 방 한구석에 쌓아 놓은 서류철, 심지어 의자에 앉아 있던 나까지, 방 안의 모든 게 '뻥' 터져 버렸다. 일상의 낡은 것들이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대정신'은 무색무취의 기체와 같아 사방을 빙 둘러 꽉 채우고 있어도 우리는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인화성과 폭발력이 강해 작은 불씨에도 곧 터져 버린다. 문제는 대규모 폭발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그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그런 연유로 시대정신이 위험하다 기피하고 때론 막으려는 이도 있는데 그렇게 변화를 거부한들 좁은 틈으로 밀고 들어와 그 즉시 우리 주위를 빙 둘러싸는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존재 여부를 미리 알지 못하니 사전 작명도 불가능하다. 일이 터진 뒤 비로소 우리는 당대의 시대정신에 그럴싸한 이름 하나 붙이곤 한다.


한껏 당하고 나서야 "아, 그때 그 이름 모를 소녀가 바로 당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었구나" 느끼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


개중에는 앞서가는 이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언제 폭발할지, 언제 꽃이 필지 본능으로 직감하는 이른바 '선구자'인데 역시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아니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선상에 서 있는지를 나중에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기 선구자가 오고 있다"거나 "저기 달려오는 이가 선구자"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노래 가사도 '말달리는, 활을 쏘는, 맹세하는'이 아니라 '강가에서 말달리던, 활을 쏘던, 맹세하던 선구자'처럼 과거형 아닌가?)


돌아보니 1987년 '군인' 노태우를 직선 대통령으로, 2002년 '고졸' 노무현을 청와대 주인으로 화려하게 변신시킨 당대의 시대정신은 '보통 사람'과 '바보'였다.(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으로, 바보는 진짜 바보로 판명나고 말았지만….)


앞서 주저리주저리 말했듯 예측 불가능이지만 2012년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최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고 있다. 이번에도 '줄'을 잘못 서거나 '끈'을 잘못 잡으면 5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리라.)


지면 관계로 길게 말하긴 곤란하지만, 분명한 건 '386'으로 통칭되던 나의 시대정신은 이제 한물 갔다는 것이다.


군사문화에 반기를 들고 시작했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그 문화에 상당 부분 물들어버린, 그래서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정통성 없는 통치자의 전복을 꿈꿨기에 정부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 결과 법과 질서를 우습게 알게 된, 그래서 웬만한 불법(예컨대 위장전입이나 다운 계약서 등등)은 정부와 제도 탓으로 합리화해 버리는, 외세에 대한 강한 저항이 체질화돼 40대 이후 찾아온 개방화 물결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가난한 유년을 보낸 탓에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예속된 삶이 일상화된, 내 슬픈 자화상.


개방적이며, 경쟁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성공을 위한 도전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휴먼서바이벌 도전자'(KBS2)나 '나는 가수다'(MBC) 세대를 보면서 '386=흘러간 물'이란 서글픈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박종인의 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보기






박종인 경제담당 부국장 겸 금융부장 ai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