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하는 충무로산책
그 방에 들어갈 때 나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책걸상과 책장의 책, 방 한구석에 쌓아 놓은 서류철까지 모든 것이 똑같은 자리 똑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을 5센티미터쯤 열어둔 것까지 아침에 두고 온 그 풍경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게 날아가 버린 것이.
책걸상과 책장의 책, 방 한구석에 쌓아 놓은 서류철, 심지어 의자에 앉아 있던 나까지, 방 안의 모든 게 '뻥' 터져 버렸다. 일상의 낡은 것들이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대정신'은 무색무취의 기체와 같아 사방을 빙 둘러 꽉 채우고 있어도 우리는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인화성과 폭발력이 강해 작은 불씨에도 곧 터져 버린다. 문제는 대규모 폭발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그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그런 연유로 시대정신이 위험하다 기피하고 때론 막으려는 이도 있는데 그렇게 변화를 거부한들 좁은 틈으로 밀고 들어와 그 즉시 우리 주위를 빙 둘러싸는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존재 여부를 미리 알지 못하니 사전 작명도 불가능하다. 일이 터진 뒤 비로소 우리는 당대의 시대정신에 그럴싸한 이름 하나 붙이곤 한다.
한껏 당하고 나서야 "아, 그때 그 이름 모를 소녀가 바로 당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었구나" 느끼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
개중에는 앞서가는 이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언제 폭발할지, 언제 꽃이 필지 본능으로 직감하는 이른바 '선구자'인데 역시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아니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선상에 서 있는지를 나중에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기 선구자가 오고 있다"거나 "저기 달려오는 이가 선구자"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노래 가사도 '말달리는, 활을 쏘는, 맹세하는'이 아니라 '강가에서 말달리던, 활을 쏘던, 맹세하던 선구자'처럼 과거형 아닌가?)
돌아보니 1987년 '군인' 노태우를 직선 대통령으로, 2002년 '고졸' 노무현을 청와대 주인으로 화려하게 변신시킨 당대의 시대정신은 '보통 사람'과 '바보'였다.(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으로, 바보는 진짜 바보로 판명나고 말았지만….)
앞서 주저리주저리 말했듯 예측 불가능이지만 2012년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최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고 있다. 이번에도 '줄'을 잘못 서거나 '끈'을 잘못 잡으면 5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리라.)
지면 관계로 길게 말하긴 곤란하지만, 분명한 건 '386'으로 통칭되던 나의 시대정신은 이제 한물 갔다는 것이다.
군사문화에 반기를 들고 시작했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그 문화에 상당 부분 물들어버린, 그래서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정통성 없는 통치자의 전복을 꿈꿨기에 정부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 결과 법과 질서를 우습게 알게 된, 그래서 웬만한 불법(예컨대 위장전입이나 다운 계약서 등등)은 정부와 제도 탓으로 합리화해 버리는, 외세에 대한 강한 저항이 체질화돼 40대 이후 찾아온 개방화 물결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가난한 유년을 보낸 탓에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예속된 삶이 일상화된, 내 슬픈 자화상.
개방적이며, 경쟁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성공을 위한 도전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휴먼서바이벌 도전자'(KBS2)나 '나는 가수다'(MBC) 세대를 보면서 '386=흘러간 물'이란 서글픈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박종인 경제담당 부국장 겸 금융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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