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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복잡한 세상과 단순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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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복잡한 세상과 단순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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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깨어 미국 뉴스를 봅니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를 확인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국채에 심하게 '물린' 프랑스 은행들의 CDS 가격도 챙겨야 합니다. 공포지수라고도 부르는 VIX지수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잠이 깬 김에 다른 나라들의 증시 상황도 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주가지수를 살펴봐야 하는 상황까지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거액의 주식투자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간접상품이라 분초 단위 거래를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며칠 참으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기 어려웠습니다. 전에는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던 여러 지표들이 지난 한 주간에는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에 그렇습니다. 도대체 합리적인 판단은 무엇일지 오랫동안 전전긍긍했지만 결국 제 '감'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저는 '경제적 인간'이 아닌가 봅니다.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가정은 인간이 완벽한(또는 상당한) 합리성에 근거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시카고 대학의 젊은 경제학자 스티브 레빗은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하는 교사,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갱과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사실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인 많은 일들이 사실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통적인 경제적 인간 가정에 대한 매우 강력한 옹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주장에 회의적입니다. 이번 주가 폭락처럼 투매와 주가 하락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원인과 결과는 점점 모호하게 섞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며,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되기 쉽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종종 비극이 되기도 하지요.

요즈음 많은 분석가들이 시장에 충격을 준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같은 여러 요인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요인들이 희석되면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부 요인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고, 투자자들은 외부 요인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경제매체들의 조언입니다. 그러나 외부 요인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시장은 급등락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이단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복잡계 이론가들입니다.


십여년 전 발표된 한 논문은 주식시장 안에 기업의 내재가치를 따지는 투자자와 기술적 분석에 따른 투자자(낙관적 관점을 가지거나 비관적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가 어떤 비율로 분포하는지, 그리고 그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외부요인 없이도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 모형에서는 투자자들이 비관론에 영향을 받아 주가 그래프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주가 급락이 나타납니다. 시장의 급변을 막기 위해서는 비관론이 전염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는 셈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폭력적 행위에 쉽게 동화되는 사람이 단 몇 명만 무리 속에 끼어 있어도 폭동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최근 영국 폭동의 진행과정은 이와 아주 유사합니다).


말하자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버텨내려면 낙관적 생각이 필요합니다. 좀 '비합리적으로' 들리겠지만 낙관적 생각을 통해 비관론에 전염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를 급격한 파국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컴퓨터에 띄어놓았던 수많은 경제지표 창을 다 닫습니다. 이럴 땐 지표 분석 대신 막춤이라도 추는 게 더 나을 것 같으니까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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