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 5회 MBC 월-화 밤 9시 55분
의자(노영학)와 무진(차인표)이 재회했다. 본 모습을 숨기고 위장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가던 두 인물이 그 독하고 모진 삶을 견뎌왔던 간절한 생의 이유를 토로하는 순간 <계백>은 마침내 <선덕여왕>의 그림자를 벗고 고유의 서사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삼국통일의 대업이라는 승자의 역사를 향해 직진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선덕여왕>의 전형적인 영웅서사와 달리, <계백>은 비극적 운명을 버텨내는 처절한 생의 의지를 그리는 생존의 서사에 가깝다. 의자가 비굴한 바보의 얼굴을 가장하고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어머니 선화(신은정)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집단에 대한 복수의 의지이며, 무진이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는 것은 못 다한 충절의 약속과 복수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수심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과 그들의 죽음마저 애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5회에서 이들의 생의 이유가 밝혀짐과 동시에 사택가문의 살생부가 극의 중심 소재로 대두된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백제를 지배하는 그들의 권력이 수많은 희생을 통해 유지되어 온 살생부의 역사라면, 앞으로 그와 대립할 영웅의 이야기는 사람을 지키고 살리기 위한 서사가 될 것이다. 6회 예고편에서 계백(이현우)이 양모의 시체를 안고 무진을 향해 “황후폐하가 처자식보다 중요하진 않잖아!”라며 오열하는 장면은 그러한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과연 사람의 목숨은 충절이나 부국과 같은 ‘대의’보다 사소한가. 첫 회 황산벌전투에서 병사들을 향한 “죽지 말고 살아 남아라”는 연설의 첫 마디가 의미심장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작은 과오는 큰 공적을 가릴 수 없다”며 부강한 국가의 기치 아래 사람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는 사택비(오연수)의 입장이 여전한 우리 현실 수구 기득권층의 논리이며 오히려 점점 강화된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 어쩌면 생존의 문제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간절한 화두인지도 모른다. <계백>은 비로소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키며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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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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