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홍콩에 사는 중국인 양씨 가족은 가전제품이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13.9㎡짜리 방 한 칸에서 살기 위해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인 4000홍콩달러(54만원)를 월세로 지불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 홍콩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조명하며 홍콩 정부가 주택 가격을 하향 안정화 하는 것 만큼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주택 임료가 가장 비싼 홍콩에는 양씨 가족과 같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달 홍콩에서 지은지 54년 된 8층짜리 낡은 임대아파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한 사건은 아파트 한 채를 여러 개로 쪼개 임대하는 홍콩 임대아파트의 구조적인 문제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했다.
홍콩에서는 모자라는 주택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기존 아파트를 개조해 작은 방을 추가로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개조가 불법이 아니다 보니 많은 아파트 주인들이 더 많은 임대 수익을 얻기 위해 하나의 아파트를 여러 채로 쪼갠다. 대부분이 비상구와 탈출 통로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사고에 취약하다.
홍콩 저소득계층이 열악한 환경의 임대주택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치솟는 홍콩의 주택 가격 때문이다. 홍콩 주택 평균 가격은 2008년 말 이후 현재까지 76% 급등했다.
높은 주택 가격은 투기 붐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택 수요·공급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홍콩인의 절반은 자기 집이 아닌 임대주택에서 거주한다. 홍콩 정부도 향후 10년 동안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 하기 위해서는 도시가 올해 2만채의 주택을 추가로 공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홍콩 정부는 주택 공급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홍콩 전체 토지 가운데 7% 미만이 거주용으로 등록돼 있다. 홍콩대 차우 퀑윙 교수는 "홍콩에는 토지가 부족하다"며 "홍콩 정부의 토지 이용 계획은 사회 변화를 따라잡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홍콩 정부가 토지 매각을 통해 더 많은 수입을 거둬들이기 위해 주택 가격 상승을 용인해왔고, 그 과정에서 주택용 토지 공급을 억제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은 최근 홍콩 주택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주택용 토지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주택을 살 때 지불해야 하는 계약금 비율 상향 조정, 외국인의 홍콩 주택 구입 규제 등 홍콩 정부가 2009년 10월 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 부동산 시장 억제책을 발표하며 시장 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가 없자 이번엔 공급량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박선미 기자 psm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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