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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시간을 지나 온 주병진 씨,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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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시간을 지나 온 주병진 씨, 반갑습니다

‘여전하다’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MBC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한 주병진 씨를 보는 순간 “여전하시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한결 같은 모습이라는 건 시청자의 눈에서 멀어진 십여 년 전을 떠올린 얘기가 아니에요. 1978년, 지금은 KBS 통폐합으로 사라진 TBC 주최 <해변 가요제>에 누님 주선숙 씨와 듀엣으로 참가하셨을 때, 그때와도 별 다름이 없으시더라고요. 써놓고 보니 무려 30년도 더 전의 일이네요. 구창모 씨며 배철수 씨, ‘벗님들’의 이치현 씨, 그리고 ‘회상’을 부른 김성호 씨까지 모두 그해 이 가요제 출신이니 참 대단했던 무대였습니다. 한 해 먼저 출발한 MBC <대학 가요제>가 우리나라 가요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긴 했지만 화려하고 다채로움만큼은 <해변 가요제>가 한 수 위였던 것 같아요. 주병진 씨 남매는 본상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다음 날 아침, 대상 수상에 빛나는 왕영은 씨네 팀 ‘징검다리’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왔었죠. 지금으로 치면 Mnet <슈퍼스타 K2>의 강승윤 정도의 화제였을까요? 그만큼 주병진 씨는 첫 등장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 다음해였는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병진 씨를 보고 그때 수영 잘한다던 바로 그 사람이 연예인으로 데뷔했다며 친구들과 수선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화라고 불릴만한 대단한 성공이었지요


인고의 시간을 지나 온 주병진 씨, 반갑습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로 등극한 이후로 주병진 씨 행보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은 양 순조로웠었죠.

사실 당시 개그맨들은 그다지 세련된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롱다리’의 이휘재 씨나 말끔한 외모의 김용만 씨, 박수홍 씨의 등장은 한참 뒤의 일이고요. 대부분 소탈하고 정감 있는 유머러스한 풍모로 시청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었죠. 따라서 양복을 깔끔하게 잘 차려입은 개그맨의 출현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개그맨이 예능 프로그램 MC를 보는 예도 주병진 씨가 처음 열었지 싶었는데, 이번에 듣자니 송창의 PD께서 주병진 씨를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로 전격 발탁하셨다고 하대요? 그러고 보면 송창의 씨가 발굴해낸 인재가 참으로 많습니다. 송창의 씨가 연출을 맡았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며 <특종 TV 연예>를 통해 스타가 된 연예인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개그계의 신사 주병진 씨를 1인 MC 자리에 올려놓는 데에도 일조하신 줄은 미처 몰랐어요.


일단 MC로 등극한 다음의 주병진 씨 행보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은 양 순조로웠었죠. MBC 방송연예 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가 1990년, 불과 32세였으니 얼마나 빠른 출세입니까. 아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시절이었지 싶어요. 알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요. 게다가 사업에만 뛰어들면 뛰어드는 족족 실패를 보는 대다수의 연예인들과는 달리 기업 운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이뤘고요. 신화라고 불릴만한 대단한 성공이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세상 이치라는 게 그렇더군요. 너무 지나치게 잘 풀렸다 싶으면 반드시 제동이 걸리는 법이죠. 아니, 그냥 멈추게만 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많이 오른 높이나 거리만큼 끌어내려 놓고야 마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더라는 얘기에요. 그 자리에서 더 떨어져 아예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지, 아니면 한 걸음 씩 다시 앞으로 나아가 재기할지는 스스로의 몫일 테고요.


중년의 얼굴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얘기가 있지요


인고의 시간을 지나 온 주병진 씨, 반갑습니다


그런 이치 탓인지 주병진 씨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세상이 그처럼 시끄러웠던 건 아마 주병진 씨의 신사 이미지 때문이었을 거예요. 아쉬울 것 하나 없는 개그계의 신사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한심한 일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언론의 보도를 전적으로 믿고 살았던 것 같아요. 풍문으로 들려오는 루머에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뉴스나 기사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하도 확신이 넘치는 보도들이 줄을 이은 터라 저 역시 주병진 씨에게 실제로 잘못이 있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사건은 억울한 누명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모든 정황이 낱낱이 밝혀졌지만 그 사이 받은 깊은 상처와 수많은 잔인한 인격 모독들은 대체 누가 보상한단 말입니까.


그때부터 지금껏 정신 질환을 앓아왔다고 밝히셨는데, 왜 아니 그렇겠어요. 고 최진실 씨를 떠올릴 때도 그렇지만 주병진 씨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기억은 뚜렷하지 않으나 뭐든 저도 한 마디 보탰을 것 같아서요. 상황이 정리 된 다음 ‘알고 보니 아니라네, 아님 말고’ 하면 뭐 하겠어요. 부끄러운 일이지 뭐에요.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병진 씨의 일 이후 사건 보도를 무조건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한 마디로 말해 판단을 유보하게 되었다는 얘기죠. 그 덕에 배우 최민수 씨의 노인 폭행 의혹 때도 최민수 씨를 비난부터 하고 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 같은 사람이 꽤 되지 싶네요. 그리고 그 기나긴 십여 년의 고통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은 주병진 씨의 여전한 모습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어요. 중년의 얼굴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얘기, 괜한 소리가 아니거든요. 인고의 시간 동안 깨달음으로 인한 관록을 얻은 주병진 씨, 다시 만나 반가웠습니다. 또 다시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온 주병진 씨, 반갑습니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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