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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칸 후임 물망에 오른 터키 전 경제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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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칸 후임 물망에 오른 터키 전 경제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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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성범죄 혐의로 체포된 뒤 사퇴 압력을 받아온 도미니크 스트로스-칸(62)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결국 사퇴해 차기 총재 물망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을 둘러싸고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윌리엄 힐 출판사가 자체 조사를 토대로 차기 IMF 총재감으로 케말 데르비스(62) 전 터키 경제장관을 지목하고 나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윌리엄 힐은 데르비스 전 장관이 차기 IMF 총재로 선출될 확률을 5분의 2로 보고 있다.


한편 관례대로 유럽인이 총재 자리를 이을 경우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던 크리스틴 라가르드(55) 프랑스 경제장관에 대해서는 확률 14분의 1로 보고 있다. 프랑스인인 스트로스-칸 총재가 사임한 마당에 같은 프랑스인이 IMF 총재직을 이을 명분은 없다는 것이다.

차기 IMF 리더로 유럽 외 지역 출신을 상정할 경우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로 데르비스 전 장관이다. 데르비스 전 장관은 지난 2001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와 IMF·세계은행의 긴급 자금으로 터키를 금융위기에서 구해낸 인물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1949년 태어난 데르비스의 아버지는 터키인, 어머니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이다. 데르비스는 1968년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1970년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73년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76년까지 터키 앙카라 소재 중동공과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며 당시 뷜렌트 에제비트(1925~2006) 총리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1976~1978년에는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1977년 세계은행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96년 부총재까지 올랐다. 이렇게 22년을 세계은행에서 보낸 데르비스가 터키로 돌아온 것은 2001년이다.


그가 2001년 3월 1일 경제장관에 취임했을 당시 터키는 은행 도산과 물가 폭등 등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는 구조적인 개혁으로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국영 은행들을 보호했다.


데르비스는 더 나아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농업·에너지 부문, 예산 편성 과정에도 칼을 들이댔다. 데르비스의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터키 내에 아무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데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도 뒤따랐기 때문이다.


데르비스와 친분이 두터웠던 미국·유럽의 유력 인사들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 덕에 IMF·세계은행으로부터 긴급 자금 200억 달러를 지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002년 터키 경제가 급성장하고 1990년대 70%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2003년 12%로 떨어졌다. 금리가 낮아지고 터키리라화(貨)는 안정됐다. 단기간에 전광석화 같은 개혁을 단행한 데르비스는 2002년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야당인 공화인민당(CHP) 후보로 같은 해 11월 의회에 진출했다.


2005년 5월 191개 국가 대표들이 모인 유엔 총회에서 데르비스는 만장일치로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에 선출됐다.


2009년 UNDP 총재 재선을 거부한 데르비스는 현재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부소장으로 글로벌 경제개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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