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경제5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 "물가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말했다. 물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기업 측에 협조를 당부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농산물 가격 폭등, 전월세 대란, 기름 값 상승에 이어 공산품 가격까지 잇따라 오르거나 들썩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고통 분담'이란 말에 얼핏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과연 정부는 고통을 나누고 있는가. 지식경제부는 지난 1일부터 대표적인 공공 요금인 도시가스 요금을 기습 인상했다. 액화천연가스(LNG) 값이 올랐다는 게 이유다. 평균 4.8%를 올리면서 원가 상승 요인을 모두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가 인상을 예고한 것이다.
지경부가 어떤 곳인가. 그동안 휘발유 값을 내리도록 정유회사를 줄기차게 압박했고, 며칠 전에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을 4시간 만에 원위치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공공 요금도 요인이 분명하다면 올리는 게 당연하다. 쌓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럼에도 지경부의 행태가 실망스러운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팽개쳤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초 물가가 급등하자 당정회의, 국민경제대책회의 등을 잇따라 열었고 1월13일에는 9개 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민 물가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때 지경부는 '전기ㆍ가스ㆍ우편 요금 등 공공 요금을 원칙적으로 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번째로 높다고 한다. 정부의 물가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업에 '성의표시'를 강요하던 정부가 동결하겠다던 공공요금을 앞장서 올렸다. 이율배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회를 엿보던 다른 공공요금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국전력은 가스 요금이 올랐으니 전기 요금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나섰다. 상수도, 시내버스, 도시철도 요금도 들썩인다. 시ㆍ도에 물가안정 지원금을 배정키로 하는 등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의 '동결' 다짐이 무색하게 공공요금발 물가폭탄이 터질 조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에 고통 분담을 말할 처지가 아니다. 화를 부른 것은 정부 스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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