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성경 속 세리(세금 걷는 사람)는 원수, 이방인과 동급으로 그려진다. 학자들은 고대 로마인들이 세리를 터부시한 배경에 강한 조세저항이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본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이 느끼는 세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국방, 교육, 근로와 더불어 국민이 져야할 4대 의무 중 하나인 납세. 하지만 세금 내는 돈은 어쩐지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의사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세금 탈루 소식을 접할 때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크다.
이 정부 들어선 유독 세금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잇따른 감세 정책으로 '부자감세·서민증세' 논란이 일어 조세저항에 계급 갈등까지 뒤섞인 탓이다.
31일 정부가 내놓은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방안'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결론이다. 촘촘한 세정으로 재정을 탄탄히 하면서 공평과세를 통해 민심을 추슬러보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공정 사회'를 임기 후반 국정과제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고민을 담아 지난달 17일과 이날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다.
정부가 이번 방안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성실납세 분위기 확산과 납세순응도 제고'다. 각론에선 당근과 채찍을 함께 제시했다. 모범 기업과 성실납세자에겐 세금을 깎아주거나 출국 편의를 봐주고, 표창을 통해 사회적인 명예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탈세 기업이나 고액체납자들에겐 세법을 엄정하게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4월 임시국회에서는 어떻게든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 내용을 세무사가 검증하는 성실신고확인제도를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는 모범기업과 성실납세자에 대해 조세 감면 등 세제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중소·지방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조사 부담은 낮추고, 쌓여있는 신용카드 포인트로 국세를 내거나 온라인으로 지방세를 낼 수 있도록 납부 편의도 도모하겠다고 했다.
전시효과도 노리기로 했다. 세금 잘 내는 기업, 성실납세자에 대한 표창을 확대하고, 성실납세 엠블럼을 부착하도록 하거나 출국에 전용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대국민 캠페인도 벌인다. 현금영수증 주고받기 운동 등 성실납세문화 확산과 미래 납세자인 학생 등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반대로 제재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재정을 좀먹고 사회적 갈등을 만드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성실신고확인제도를 도입하고, 현금영수증 발급에 대한 사후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를 자리잡게 하면서 자영업 등 소득 파악이 어려운 분야에 대한 세무 조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변칙 상속이나 증여를 막기 위한 노력도 강화된다.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방안을 모색하고, 결산서류 공시대상 공익법인을 늘리는 등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도 힘쓰기로 했다. 변칙 탈루 유형을 관리하는 데에도 보다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정부는 아울러 오는 6월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 시행을 앞두고 사전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해외탈루소득 파악 등을 위한 세정 전문 요원을 파견하거나 외국의 과세 당국과 공조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배째라'식으로 버텨온 고액체납자를 대거 출국 규제 대상에 넣겠다고 했다. 명단 공개 대상을 확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름을 알리기로 했다. 다른 나라와 적극적으로 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해 해외 은닉 재산을 파악하고, 체납세액 징수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거나 체납정리 특별전담반을 두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체납 정보를 공유해 지방세 체납징수 위탁 건수를 늘리고, 국가와 지자체가 체납 징수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작업이 부동산 취득세 인하 계획으로 불거진 중앙 정부와 지자체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한편 고소득자의 탈루 소득과 과세 사각지대에 있는 세원을 찾아내고, 역외 탈세로 빠져나가는 돈을 막기 위해 정확한 해외 소득 파악에 주력하기로 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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