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전라남도 완도에서 미역 공장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H산업 대표는 요즘 미소를 감추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전체 생산량 중 80~90%를 해외로 수출하고 그 중 90% 가량을 일본으로 판매하는 이 업체에 일본 대지진 이후 주문량이 평소에 비해 곱절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내 미역 생산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이 초토화 되면서 사실상 일본내 미역 생산이 불가피해 졌다. 예전보다 소비가 줄긴 했지만 생선을 즐겨 먹는 일본인에겐 미역과 같은 해조류는 중요한 먹거리 중 하나다.
이 때문에 H산업에는 현지 바이어들을 통해 쉴새없이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H산업 대표는 "지진 이후 주문이 폭주해 이를 소화하기 위해 밤에도 공장을 돌려야 할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대로 화훼업을 하는 R업체 대표는 요즘 죽을 맛이다. 전라북도 임실에서 장미를 재배하는 이 업체는 우리나라 한 해 장미 수출의 57%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재배 물량은 10% 정도만 빼고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
일본에서 입학, 졸업, 승진, 춘분 등 꽃 수요가 몰리는 3~4월 물량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양을 준비해 뒀다. 그러나 지진 사태로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며 수요가 급격히 줄어 물량을 해소하기 어려워 졌다.
일본에서 3월 초 한 송이에 90엔 하던 장미값이 지진 이후 송이당 15~20엔으로 80% 가량 뚝 떨어졌다. 그렇다고 국내 시장에 유통시킬 수도 없다.
물량이 엄청나다 보니 국내에선 받아줄 만한 수요처도 없고 시장에 내놨다간 장미 업계는 물론이고 화훼시장 전체가 피해를 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업체로서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국내 농식품 수출 업체들의 희비가 업종별·품목별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타이어와 조선, 석유화학 등 장치산업에는 큰 지장이 없는 반면 수출의 양대축 가운데 하나인 농수산식품은 품목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농식품 중 라면, 생수, 미역 등 식생활과 관련된 품목들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장미, 백합, 인삼 등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중 지난 11일까지 누계로 129만7000만달러 어치를 수출한 미역은 25일 누계로는 263만8000만달러를 기록하며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보름 사이 수출량이 2달 반 동안 수출한 물량 보다 많을 정도다.
지난 11일까지 856만달러(전년비 51.7% 증가)를 수출한 라면은 25일 누계때는 1235만달러(71.5% 증가)를 기록하며 지진 발생 후 19.8%포인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생수는 40만달러(9.4% 증가)에서 102만달러(117.4% 증가)로 108%나 급증했다.
이와는 달리 일본 내 소비 위축과 수요 변동으로 일부 품목은 일시적인 수출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화훼류의 경우 일시적 수출 중지와 현지 소비감소, 가격 하락 등으로 4월 수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수출효자 종목이던 장미의 피해가 걱정이다. 장미는 247만달러(0.4% 증가)에서 지진 후 314만달러(-2%)로 증가세가 꺾였다. 급기야 28일 누계는 322만달러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에 비해 -13.5%까지 떨어졌다.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데다 방사성 공포까지 확산되면서 한동안 수출 업체들의 희비가 교차할 것으로 보인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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