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지금 최대 현안은 물가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8일 답답한 마음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제10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현장 방문을 많이 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던 터였다.
이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기후변화,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어 "정부가 최선을 다할 때 에너지 절약 등 국민들의 협조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물가상승이 외부변수에 따른 것으로 대책마련이 어렵지만, 정부가 먼저 노력해야 민간분야에도 동참을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외부변수가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관계부처가 이렇다 할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고양시 대화동 킨텍스에서 열린 제3기 생활공감정책 주부모니터단 출범식에 참석해 주부들에게 '에너지 10% 절감운동'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기업들도 에너지 절감과 물가안정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중동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120불이 될 지, 130불이 될 지 아무도 예측 못한다"면서 "기업도 에너지를 절감하고 길거리 광고도 밤에는 끄고, 가정에도 필요할 때만 전기를 켜고 이런 노력을 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럴 때는 정부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며 "기업에 당부도 하는데, 언론에서는 '시장경제에 위배된다', '정부가 너무 기업에 압력을 넣는다'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압력 넣는 게 아니고 협력해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기업은 물론 주부들에게까지 직접 에너지 절감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정부는 리비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봄이 오면 물가도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에 차있었다. 구제역 사태가 수그러들고,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식탁물가도 어느 정도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상치 못한 유가 폭등으로 통제불능에 가까운 상황이 되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에 참석해 "짐을 내려놓고 싶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4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3% 물가관리는 더 중요하다"며 "서민을 위해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갖고 물가 억제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동안 물가는 더 뛰었고, 두달여만에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10일 급기야 '성장' 대신 '물가'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81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금년 들어와서 뜻밖에 여러 국제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고,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금년에 국정 중에서 성장과 물가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물가에 더 심각하게 관심을 가지고 국정의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세계적인 물가폭등에 올해 경제정책의 목표가 '성장과 물가, 두마리 토끼 잡기'에서 '물가에 올인'으로 전면 수정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물가 잡기'에 직접 나서면서 물가 정책도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물가 문제는 우리가 최선을 다 하더라도 우리의 소위 '비욘드 콘트롤(통제할 수 없는 상태)'이 되지 않는가 하는 그런 부분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날 다시 '에너지 절감'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 가정을 하나로 묶어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뭐? 바로 리더십이다.
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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