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날뛰는' 기름값 잡기에 대한 묘수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정유소와 주유소가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기름값 인하 발언에도 침묵을 지키던 주유소업계가 고유가로 인한 수요 감소로 생계 위협에 직면하자 정유사를 향한 쓴소리를 서슴지 않고 있다.
10일 주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유소협회 등은 국내 정유사가 일제히 공급가를 대폭 올려 일선 주유소 판매가격도 일제히 인상, 소비자 항의가 빗발치자 공식적인 해명에 나서고 있다.
전국 휘발유의 전국 평균 가격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리터(ℓ)당 2000원대를 목전에 둔 가운데, 비싼 기름값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생계를 위협받은 주유소 업계가 적극적인 항변에 나선 것이다. 10일 현재 서울지역 휘발유 평균가격은 1996.85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주유소협회 "정유사 공급가 실제와 달라"=정상필 주유소협회 이사는 "이달 들어 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이 정유사는 리터(ℓ)당 4원에서 17원 올렸다는데, 왜 주유소는 그보다 훨씬 많은 마진을 취하느냐며 삿대질까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정유사가 공개하는 공급가에 모순이 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주유소협회가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2월 넷째주 대비 3월 첫째주 정유사가 주유소에 제공한 실제공급가 인상분은 휘발유 평균 83원, 경유 평균 87원으로 언론에 알려진 인상분보다 크다는 것. 이에 주유소업계는 "실제공급가보다 낮은 가격을 정유사가 공개해 고유가 책임을 일선 주유소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통상 정유사 공급가는 1주 후에 일선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는데, 소비자들은 시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주유소가 폭리를 취한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유사가 공급가를 '올릴 때는 큰폭, 내릴 때는 소폭' 적용하니 기존 재고 물량을 소진해야 하는 주유소 입장에서는 가격 인하폭을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정부의 기름값 인하 압박이 계속되자 지난달 국내 정유4사는 일제히 난방용 등유 가격을 내렸는데, 이 역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등유는 전체 매출 비중의 8% 정도밖에 안된다"며 "기존 등유탱크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판매하는 것이지 오히려 유지가 더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 이사는 "2008년 11%에 달하던 주유소 마진율 역시 올해 5%대까지 곤두박질쳤다"고 덧붙였다. 고유가로 인한 수요 감소로 장사가 되지 않자, 최근 한달새 임대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200건에 달해 4-5년전 30건 내외에 비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정유사들은 주유소협회 측이 제기한 정유사 실제공급가 수치를 문제삼고 나섰다.
◆정유사 "150일간 가격 상승은 주유소탓"=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정유사는 매일 거래되는 물량의 가중 평균 가격을 지식경제부에 보고한다"며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에 매주 금요일 공개되는 공급가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말했다.
오히려 주유소협회의 조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협회가 정유사 실제공급가를 조사하기 위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는데, 몇개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조사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지난 10월 이후 정유사 공급가는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주유소 가격은 150일동안 지속적으로 올랐다는 것은 주유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정유사가 공급가를 내려도 주유소에서 반영하지 않으니 인하 효과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고유가로 인해 자가 운전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수단을 바꾼 직장인 이모씨(서울 서대문구·34)는 "정부, 정유사, 주유소 등이 승강이를 벌이며 '책임 떠넘기기'에 나선 가운데 근본 해결책 없이 '서로 네탓'만 하는 진풍경이 발생하고 있다"며 "서민들의 고통만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소정 기자 s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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