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거시경제 전문가인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이달 초 (주)두산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임 박사의 기업행은 뜻밖의 일이었다.
지난해부터 이렇게 KDI를 떠난 박사급 인력만 7명. 간판 연구위원들의 연이은 이탈은 KDI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오는 11일 설립 40주년을 맞는 KDI는 지금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연구기관)'라는 자부심과 흔들리는 위상 사이에서 갈 길을 찾고 있다.
◆아파트·파격 연봉에 초대 멤버 영입
지난 1971년. 당시 37세이던 김만제 KDI 초대 원장이 뉴욕으로 떠났다. KDI를 함께 만들 연구원을 뽑으러 떠난 길이다. 귀국길, 김 원장 수첩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10명의 개원 멤버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 홍원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그 때 낙점된 인재들이다.
'미국 박사'가 흔치 않던 그 때, 인재를 모으자면 당근이 필요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20대 후반이던 젊은 연구원들에게 "반포의 아파트와 월급 3만원씩을 주라"고 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의 월급이 1만원 남짓이었으니 상당히 파격적인 처우였다.
◆한국경제 40년 '나침반'
그렇게 문을 연 KDI는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미국산(産) 경제정책을 수입하던 1970년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놨고, 80년대엔 재벌 정책에 눈을 돌렸다. 경제 개방과 환란을 동시에 경험한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화, 고령화, 양극화 해소에 관심을 쏟고 있다.
몸집도 부쩍 자라 지난해 집행한 연구사업비만 약 600억원. 본원과 대학원, 각 센터 인력은 292명에 이른다.
◆사공일·김중수·강봉균… 미래엔?
그사이 KDI를 거쳐간 인력만 약 1000여명. 관가에선 1982년까지 원장을 지낸 초대 김만제 원장이 경제부총리로 발탁됐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사공일 무역협회장도 KDI가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KDI 출신이다.
정치권에선 10대 원장을 지낸 민주당 강봉균 의원과 한나라당 유승민, 이혜훈, 신지호, 유일호 의원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 각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250여명이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선수'들의 잇따른 이탈은 고민거리다. 핵심 인력들이 높은 연봉을 따라 기업이나 다른 민관 연구기관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기는데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다. 정부 발주 연구에 치중하다보니 현안만 좇는 게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2013년으로 예정된 세종시 이전안 또한 악재다.
KDI의 한 연구위원은 "KDI를 나간 연구원이 다른 연구기관 대표로 공동 회의에 참석해 서로 표정관리가 어려웠던 경험도 있다"면서 "인력관리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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