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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성 "나에겐 세 개의 조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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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성 "나에겐 세 개의 조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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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주변에서 세 개의 조국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계도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다"

제일교포 4세 축구선수 이충성(일본명 리 다다나리, 산프레체 히로시마)이 27일 오후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 일본으로 귀화를 선택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당초 이충성은 2004년 한국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태극 마크를 달고 뛰었다. 그는 "축구선수로서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고 운을 띄우며 "한국 국적으로서 한국 대표팀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대표팀 최종 명단에 선발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실력부족도 한 원인이었지만 정신적 충격도 있었다. 그는 "뒤에서 누군가 '반쪽바리'라고 한 말을 들었고, 아버지께 물어 뒤늦게 그 뜻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은 스스로 자신의 국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재일교포)란 인종이라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처음으로 국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졌다.


이충성 "나에겐 세 개의 조국이 있다"


그러던 가운데, 2008년 올림픽 일본축구대표팀에서 이충성을 발탁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고민하던 그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전까지 재일교포가 일본 축구대표팀에서 뛴 적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넓히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 이철태 씨 역시 "대표선수로 뛸 기회가 일본에서 먼저 왔을 뿐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기회가 왔다면 그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귀화를 선택한 뒤 이충성은 할아버지의 선산을 찾았다. 그래야할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그 곳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란 말이 나왔다. 그만큼 귀화는 그에게 힘든 결정이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긍지를 놓지 않았다. 귀화하면서 '리'라는 한국 성씨를 버리지 않은 것. 일반적으로 재일교포들이 귀화할 때 성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주변에서 세 개의 조국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계도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다"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2011 아시안컵 결승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는 세레모니 역시 같은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이충성은 "(북한대표팀을 선택한)정대세의 길, 또는 나의 길처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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