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 강연 펼쳐…금융현안은 잠시 쉬어가기?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한국경제가 기적과 같은 성장을 이룬 것은 유목ㆍ기마민족의 유전자(DNA)가 우리 민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의 발언이 아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사진)이 지난 21일 출입기자단 신년회에 앞서 가진 강연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금융위 출입기자 및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의 DNA'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한국 금융당국의 수장 격인 현직 금융위원장이 강연할 내용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주제를 떠나서 신년회 전에 출입기자 및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서는 자체도 꽤나 이색적이다.
김 위원장의 역사 강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년간 같은 주제로 외부에서 수차례 강연을 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서 물러난 뒤부터 역사에 푹 빠져들었다. 몽골ㆍ터키 등 해외 탐방에 나서는 것은 물론 구하기 힘든 역사책들도 여러 권을 자비로 구했을 정도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연에 앞서 현직에 있는 동안 다시는 역사 강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이 '마지막 수업'인 셈이다.
그의 역사 강의를 두고 기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뜬금없다는 반응과 열성에 감명받았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대체로 뜬금없다는 쪽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에게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 여러 금융 현안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결국 역사 얘기만 하고 끝났기 때문이다. 신년회 만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융 현안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부임한 뒤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등 금융권도 놀랄 정도의 발 빠른 행보를 보인 바 있어 당분간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몸을 사리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제2금융권에서는 취임 초 삼화저축은행에 대해 전격 영업정지 조치를 취하는 등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다가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주춤하고 있다는 음해성 루머도 나오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의 강연 내용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960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1배나 성장했다. 같은 기간 중국이나 일본ㆍ미국의 GDP 성장률보다 훨씬 높다. 이 기간 동안 세계 GDP는 6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는 이 같은 고속성장을 뒷받침해준 것이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 ▲축적된 첨단기술 ▲정부 주도의 국내외 자본 투입 ▲수출 주도 및 중화학공업 육성 등 선택ㆍ집중 전략 ▲시장ㆍ경쟁친화적 문화와 강한 성취 동기ㆍ의지 등 한국인의 뛰어난 DNA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유라시아 대륙을 주름잡던 유목ㆍ기마민족의 피가 우리 민족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2030년대 초에는 한국이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DNA를 살려 세계와의 교류 및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산업 역시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박민규 기자 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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