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물가 안정" 가격 인하 옥죄기...통일 준비 비용 재계 떠넘기기 분통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공산품 가격 인하 압박, 강도 높은 세무 조사, 서슬 퍼런 검찰 수사, 막무가내식 손벌리기….
21세기 두번째 10년의 문턱에서 '기업 강국'의 희망을 노래해야 할 재계가 '4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연초 신발끈을 조여매고 글로벌 격전에 나서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되레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구호는 퇴색된지 오래다. 1류 기업 도약을 위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지만 기업 환경은 오히려 열악해지는 '재계 빙하기'에 기업들의 탄식만 깊어가고 있다.
◆ 가격 인하 압박에 세무조사까지
A 유통 업체 관계자는 최근 정부과천청사에 들렀다가 "정부 물가 정책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관계자는 "말이 협조이지 사실상 협박에 가까웠다"고 토로했다. B 업체도 공정위원회로부터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B 업체 관계자는 "세무조사 운운하는 바람에 괴롭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역설하면서 촉발된 가격 인하 압박이 재계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 연일 치솟는 원재료 가격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실적 악화까지 우려할 판이다. 국제 원당 가격이 1년 새 2배 이상 늘었지만 이를 소비자 가격에 반영치 못한 설탕업계는 지난 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유사들도 "기름값의 절반인 세금문제엔 눈을 감은 채 정유사만 후려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압박이 설날을 앞둔 '정치 쇼'라는 지적도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2ㆍ4분기 이후 공산품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며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세무조사마저 대폭 강화된다. 내달 1일부턴 매출액 5000억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예외없이 4년에 한번씩 정기세무 조사가 실시된다. 그동안 모범 납세 기업에 대해 일정기간 조사를 유예했던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매출액이 5000억원 이상인 법인은 564개. 산술적으로 1년에 140여개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 셈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모범납세 법인에 대해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지난 해 5월 방침과는 상반된 움직임에 당혹스럽다"고 반발했다. 국세청은 '공정 사회'를 내세우지만 일각에선 '재벌 길들이기'를 우려하고 있다.
◆ 쌈짓돈 논란에 검찰 수사까지
걸핏하면 재계 곳간에 손을 내미는 정부 행태에 기업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최근에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대국민 통일 캠페인 비용을 재계에 떠넘겨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는 통일 수혜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지만 재계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G20 개최와 월드컵ㆍ동계올림픽 유치전 등 국가 대사를 사실상 재계가 책임진 것도 모자라 통일 준비 비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라는 불만이다. 전경련측은 "정부가 걸핏하면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궂은 일을 떠넘기는 데 기업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면서 재계의 부담이 오히려 커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계를 향했던 검찰 수사도 해를 넘기면서 신년 경영 전략 수립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한화그룹에 이어 10월에는 태광그룹 수사에 돌입, 오너들을 세차례 이상 소환하는 등 '전격전(電擊戰)'을 방불케했다.
재벌총수에 대해선 1회 소환 후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던 관행에 비쳐보면 강도높은 수사였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분위기다. 결국 해당 기업은 경영 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 이미지에도 상처가 컸다는 지적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예측 가능한 경영 전략 수립이 불가능해진다"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정부가 곱씹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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