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비싼 기름값, 누구의 책임인가'
정부의 기름값 인하 압박에 정유사들이 게릴라전(戰)을 펴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가격 인하 여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며 자세를 낮췄지만, 언론을 통해 속엣말을 흘리며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분위기다. 체감 물가를 낮추자면, 정부가 유류세 수입을 줄이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지만, 기름값의 절반에 이르는 세금이 무겁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정유사의 '고통분담' 논리가 먹혀들어갈 경우 상황은 역전될 수도 있다. 기름값을 시범케이스 삼아 난타했던 정부가 되레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7일 사흘간의 정유사 가격 담합 여부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쳤고, 곧 지식경제부가 주도하는 '석유제품 가격점검 특별TF'에서 정유사와 정부가 마주 앉는다. 기름값 논란이 치열한 논리전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정유사 "유류세 먼저 깎아라"
정유사의 논리는 세 가지다. 이들은 업체별 가격 경쟁이 치열해 이미 리터당 10원 수준인 최소한의 마진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1월 둘째주 기준 전국의 일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 1804.8원 중 유통비용을 포함한 마진이 리터당 98.8원(6%) 수준이고, 유통비용을 뺀 순수 마진은 10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유사들은 "이런 가격 구조를 고려하면 유통 과정을 아무리 뒤집어봐도 인하 여력은 리터당 20원 안팎에 머문다"고 했다. 이들은 나아가 "이 정도 가격을 낮춰봐야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가격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면서 "소매가의 절반에 이르는 유류세부터 깎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1월 둘째주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04.8원이었지만,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세전 가격은 리터당 796.1원(44%). 여기서 98.8원(6%)의 유통 마진을 빼면 나머지 910원은(50%) 모두 세금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9년 유류세로 걷힌 세금은 16조원을 웃돈다.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세·에너지 및 환경세와 LPG, LNG 등 기타 유류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수입을 모두 더한 금액이다.
재정부 황정훈 조세분석과장은 18일 "아직 확정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기름값에 붙은 교통세(약 12조원)와 교육세(약 3조원), 개별소비세(약 2조원) 수입을 더하면 약 17조원 안팎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부 "불투명한 유통 구조 잡아야
물론 정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우선 정유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관계자는 17일 "정유 시장은 명시적인 카르텔이 없다고 해도 전형적인 과점시장"이라면서 경쟁이 치열해 가격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정유사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08년 주유소들이 밝힌 리터당 마진이 100원 수준이었으니 실제 마진은 이보다 클 것"이라면서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 가격은 알려진 내용이 없어 이걸 파악하면 어디에서 기름값이 부풀려지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17일 끝난 현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유사간 가격 담합 여부를 가리게 된다.
세제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도 "비싼 기름값은 정유사들의 불투명한 유통 구조때문"이라며 유류세 인하 주장을 일축했다.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재정부 임종룡 1차관은 17일 "정유사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면서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전혀 검토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2008년에도 고유가에 대응해 일시적으로 유류세를 낮췄지만, 가파른 유가 상승세와 정유사들의 유통마진 챙기기에 따라 인하 효과가 채 2주를 가지 못했다"면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기름값 인상 요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내렸던 2008년 정부의 유류세 수입은 13조8969억원으로 2007년보다 1조4523억원이 줄었다. 재정부는 세수 감소에 비해 실효는 적었다고 본다. 세율 인하로 반짝 하락했던 기름값이 1주일만에 다시 상승세를 보였고, 경유는 세율 인하 10일 뒤, 휘발유는 40일 뒤 종전보다 가격이 더 올랐다는 분석이다.
박연미 기자 chan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