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경기(인수전)에서 이기고도 경기 종료 후 승리 자격을 박탈당할 상황에 처하게 됐지만 일반 주주들은 신이 났다. 현대건설 인수전(M&A) 현대그룹에 대한 경영권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살아나면서 주가가 현대그룹주들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를 인정하지 않고,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현대그룹측이 양해각서(MOU) 해지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법정 소송까지 돌입할 태세여서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채권단간의 줄다리기는 법정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각종 변수가 많이 남아 있어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현대그룹으로서는 현대건설을 현대차측에 뺏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잠잠했던 현대그룹에 대한 범 현대가의 경영권 도전이 재현될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실제 이날 증시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개장 초 상한가인 10만2500원까지 상승하기도 했으며 현대상선도 10% 이상 오르며 4만4000원을 웃돌았다.
◆현대그룹 M&A 시나리오는?=그렇다면 실제 현대그룹의 M&A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증권업계에서 바라보는 현대그룹을 둘러싼 인수합병(M&A) 싸움 재개 시나리오는 이렇다. 자금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후, 현대건설이 보유 중인 현대상선 지분 8.3%를 현대중공업측에 넘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건설이 보유한 상선 지분매각으로 인수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데다 굳이 현대상선 지분을 보유할 이유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현대중공업의 경우, 이미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인데다 한차례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던 전력이 있던만큼 건설이 보유한 지분을 추가취득하면 지분율을 높여 다시 한번 경영권 장악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으로 현대상선 경영권을 장악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지난 9월말 기준 현대상선 지분율은 현대중공업측이 25.47%, 현대엘리베이터가 20.60%, 현대건설이 8.30%, KCC측이 4.27%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현대건설 지분이 현대중공업측으로 넘어가면 우호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 KCC 지분을 합쳐 중공업측 지분은 38%대로 증가하게 된다.
현대그룹측이 보유하고 있는 상선 지분은 겉으로 드러난 현대엘리베이터 보유분 20.60% 외에 우호지분을 포함하면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공업측도 보이지 않는 우호지분이 있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표 대결이 가능한 양상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선 것도 그룹의 모태를 다시 찾는다는 명분 외에 이같은 시나리오와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과거에도 범현대가와 악연=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대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3년 KCC그룹이 경영권 장악을 시도, 성공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당시 KCC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집으로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당시 현대그룹은 KCC측이 동원했던 펀드의 의결권 문제 등을 제기하며 여론전을 동원해서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2006년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대량매집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현대중공업측은 경영권 인수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측이) 백기사 운운하면서 속으로는 현대그룹 경영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맹비난했다.
한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시숙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은 현 회장의 시동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003년 KCC 사태를 시숙부의 난, 2006년 현대중공업의 지분매집을 시동생의 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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