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업 회계범죄 어떻게 수사하나
2회-조선업계 편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김효진 기자] "연결재무제표를 도입하면 분식회계가 줄어들거라고 다들 생각했는데 막상 분식기법만 정교해졌다. 회계공시를 엄격히 하도록 강제하면 단기적으로야 분식이 잦아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시 이전과 비슷해질 것이다. 항상 새 분식기법이 등장한다"
금융 조사통인 서울 지역의 모 부장검사가 분식회계 발생률이 증가하는 것을 두고 토로한 말이다. 분식기법이 날로 정교해지면서 이제 일반인이 재무제표를 보고 '1분'만에 회사를 속속들이 파악해버리는 시대는 지났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복잡한데 규모까지 큰 조선업체 회계범죄는 어떻게 수사할까?
◆ 일반인은 분식여부 파악하기 힘들어 = 검찰은 지난해 분식회계혐의로 S조선 이모 회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분식회계를 저질러 빼돌린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자본금을 다 까먹어 1400억원 대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재무제표를 숨기려고 싱가포르의 모 해운회사에서 빌린 1억달러를 자본금으로 위장했다. 원래 부채로 올려놔야 하는 돈이었다.
한 회계사는 "솔직히 말해서, 노골적으로 무식한 방법을 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주식발행으로 자본금을 늘리려면 주주총회에서 의사록을 작성하고, 돈을 빌린 계약서와 입금증 등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과정 전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 위조된 문서로 절차를 밟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처럼 분식회계 수법이 거칠었다고 해서 일반 투자자가 눈치채기 쉬운 건 아니다. S조선은 외주업체를 설립 한 뒤에 하청을 주면서 공사대금을 부풀려 지급하고는 그 돈을 뒤로 빼돌리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이런 식의 분식회계를 잡아내려면 재무제표에 딸린 주석을 살펴보는 게 정석인데 사실 특수관계자와 거래한 내용이 주석에 제대로 공시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인이나 회사 관계자를 거쳐 법인을 설립해버리면 특수관계자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 역시 "분식이란 뭔가를 꾸민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부채를 자본금으로 위장한 거친 수법의 분식회계 역시, 검찰이나 회계업체가 아닌 이상 계약서와 입금증 등을 일일이 확인해 볼 수 없다는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
◆조선업종 특징을 이해해서 분식 찾아들어가야 = 검찰도 재무제표를 한번 슥 보기만 해선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한다. 특수수사에 정통한 대검의 한 관계자는 "매출이 500억원에 매입이 500억원인 회사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합쳐서 1000억원이다.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하지 못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간 '1000억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고 전했다.
검찰 역시 조선업계의 특징을 일단 파악하고 들어간다. 대검의 다른 관계자는 "기업 회계범죄는 업종별로 유형이 제각각이라고 보면 된다. 업종별 특성이 수사를 하는데 참고가 된다"면서 "업종별 특성이 파악 되지 않으면 수사에 애를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업에서 해외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게 검찰이 조선업체 회계범죄를 추적할 때 착안하는 대목 중 하나다. 우선 수주비가 적정한지를 살펴본다. 선박수주같은 프로젝트는 '수주비'가 드는데, 이는 회계장부에서 당기비용으로 처리된다. 수주비가 예상외로 적게 들었다면 이를 다른 선박 수주에 든 비용과 비교해서 분식 의혹을 잡는다.
조선업계는 수익을 잡는 방식이 일반업계와 다르다는 점도 이용된다. 다른 업종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상대방에게 넘겼을 때를 기준으로 수익을 따지지만, 조선업에선 선박건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 선박제조 공정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수익을 계산한다. 가령 건조 예상비용이 100억원인데 20% 공정이 진행됐다면 20억원의 이익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50% 진행했다면 50억원의 이익이 발생했다고 장부에 잡는다는 뜻이다. 수익을 높게 잡고 싶다면 진행률만 높이면 된다. S조선 역시 선박건조 공정률을 과장해 매출을 1070억원 부풀린 8360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을 672억원 부풀린 988억원으로 손익계산서에 허위 공시했다.
이런 때에는 대차대조표의 매출채권 항목과 제조원가명세서의 외주가공비, 노무비, 원재료비 등을 분석해야한다. 선박별 공사진행률에 따른 제조원가가 알맞는지 여부, 기성확인서와 세금계산서 발행내역 등을 살펴보고 선박마다 사용된 공사원가명세서를 입수해 자재 등이 투입된 상황을 봐야 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조선업은 외국 회사와 거래가 잦기 때문에 환율로 장난을 치려는 경우가 있고, 배 수주비용을 부풀리거나 낮추는 수법도 예상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김효진 기자 hjn252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