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옛 수도 알마티 공항에 내리면 만년설이 하얗게 덮인 톈산(天山 )이 거대한 병풍을 이루고 있는 나라.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데다 원유와 천연가스 뿐 아니라, 우라늄, 철, 구리 등 광물도 풍부해 자원 개발이 한창인 신흥부국. 1991년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뒤 1998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나라 전역에 인프라 건설과 개발의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 곳곳에 마치 두바이 시내의 사진 한 컷을 보는듯한 현대식 마천루들이 드문드문 솟아 있는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한 눈에도 역동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한민족 핏줄인 고려인을 포함해 언어와 문화가 각기 다른 130여 개의 민족이 하나의 카자흐스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더구나 그 많은 민족들이 같은 영토에 뒤섞여 살면서도 그 흔한 민족 갈등이나 분쟁 한 번 없었다는 것이 이 나라의 특징이다.
짬을 내 들른 아스타나시의 ‘다민족관’에는 각각의 민족 풍습과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물들과 함께 민족간 화합을 상징하는 조형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130개에 달하는 민족들이 어떻게 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업무 차 여러 발주처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해소됐다. 이들은 모두 ‘다양성’의 가치를 무엇보다 존중하고 중시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와 영토를 차지했던 칭기즈칸은 2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대부분의 민족들을 정복했다. 당시 100만~200만 명이었던 그들이 1억~2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150년 동안이나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현지화 정책, 다양성이었다.
광활한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했던 유목 이동민들은 동지가 많아야 유리했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을 포용하며 연대하는 수평적 사고의 DNA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유목민 출신인 칭기즈칸에겐 민족과 종교, 국적이 다르다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는 착취와 군림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지혜의 유전자가 130여 민족으로 이뤄진 오늘날 카자흐스탄에도 면면히 전승돼 온 것이다.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21세기 ‘다양성’의 가치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폐쇄성과 획일주의로는 어떤 국가도, 기업도 영속하기 힘들다. 다양성에 기초한 창의경영만이 지속가능 성장을 담보하는 시대다.
비근한 예로 건설만 해도 요즘 웬만한 해외현장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인종의 용광로나 다름없다. 우리 회사가 담당하고 있는 중동의 몇몇 현장은 1만명이 넘는 현장인원 중 단 5%만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공사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서 외국인들에게 일방적인 통제와 지시, 강요와 명령으로 일관한다면 결코 한 걸음도 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다. 다름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 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로지 능력에 따른 인재의 기용으로 다양성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세계를 상대하는 기업이라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비자의 욕구를 읽어 내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힘이 오늘날 카자흐스탄을 이끄는 저력이라면, 우리 기업들도 칭기즈칸의 후예들로부터 배울 게 많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역시 ‘다양성’이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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