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 DNA서 찾는다
<14> 동국제강 장경호 회장②
"쇠를 달구어 국가 발전" 한눈 판 적 없는 외골수
박정희, 탄피사업 권유 "사람 죽여 돈벌기 싫다"
장상태-장세주 회장 등 '애국경영' 3代째 이어져
$pos="C";$title="장경호 회장";$txt="장경호 동국제강 회장이 부산제강소 상량식에 참석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size="550,375,0";$no="2010060414190751983_16.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동국제강이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철강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까지는 수많은 굴곡을 거쳐야 했다.
그중에서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까지 철에만 매달린 장경호 창업주의 뚝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동국제강은 어떠했을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는 기회를 잡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한데 반해, 굴러들어온 호기도 포기한 장경호 창업주의 경영관은 아들 장상태 회장, 손자 장세주 회장 등 3대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장부에 걸맞는 사업을 하라= 동국제강의 부흥을 주도한 장경호 회장의 3남 장상태 회장(2000년 4월 4일 별세)이 회사에 합류한 것은 1956년 봄. 서울 농대를 졸업한 후 농림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던중 정부 돈으로 2년간 유학을 다녀온 뒤 1년만이었다.
29세 한창 나이에 전무로 입사한 장상태는 얼마 안돼 아버지 아버지와 마주 앉아 속으로만 생각했던 생각을 털어놨다. "지가 이왕 사업을 한다면, 호텔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195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엔 근대적인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호텔이 거의 없었다. 선진국에서 견문을 넓힌 청년 장상태로서 가질법한 꿈이었다. 길게 내다볼 때는 크건 작건 호텔 사업은 뛰어들만한 일로 보였다. 하지만, 장경호 사장의 답은 달랐다.
"야, 네 말 들으니, 거, 손님들 몸의 때 벗겨주고 돈 벌자는 이야기 아니가?"
장상태는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더 이상 길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경호 사장은 한마디를 더 확실히 던졌다.
"이보래이. 사내들이 떳떳하게 헐 사업은 쇠를 달구어 나라에 필요한 공업을 일으켜야 하는 기다. 내말 알겄나? 철강 사업만큼 대장부에 걸맞는 사업도 달리 없는 기라."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장상태 사장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 날, 그를 불렀다. 박 대통령은 "이봐요, 장 사장. 앞으로 우리가 방위산업이 크게 발전해야 하는데 장 사장도 하나 맡아서 해보는 기 어떻소?"라고 권유를 했다. 소총과 권총에 사용되는 총알 탄피를 생산하는 사업이었다.
장상태 사장은 박 대통령의 배려에 고마워 하면서도 이 고마운 배려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지 고민이됐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장경호 회장은 아들에게서 보고를 받고도 별로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거, 참 묘하게 됐구나. 흐음, 거 하필 왜, 탄피 만드는 방위산업이야?"
장상태 사장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논쟁을 한다든지 설득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에게 장경호 회장은 "우리가 돈도 벌기야 해야겠지만도, 뭐 그렇게 사람 죽이는데 쓰는 군수물자까지 만들어가면서 벌 일이 뭐 있겠니?"
철강산업이야말로 대장부들이 일생을 걸고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장경호 사장의 말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장상태에게 이 말은 일생을 지배한 금언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한 이상 그에게 더 이상 다른 생각은 없었다.
이후 박 대통령은 또 다시 장상태 사장을 불러 "전자산업을 해보라"고 권했다. 일본 전국에 있는 공장을 견학하고 그중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한국에 가서 하면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상태 사장이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일관제철사업, 박태준에 양보= 장경호 회장이 한 눈을 팔지 않은 것은 철강사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강사업에서는 좀 더 욕심을 부려볼 만도 했는데, 그는 역시 그러질 않았다.
1964년 박 대통령이 동국제강 부산제강소를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은 장경호 회장에게 고로를 포함한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했으며, 이 사업은 당시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태준 명예회장이 맡아 추진했다. 장경호 회장과 장상태 사장은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 대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철에 대한 지식을 모두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포항제철소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더군다나 장상태 사장과 박태준 명예회장은 동갑이었던 관계라, 철을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은 평생 우정을 나눴다.
장상태 회장이 사망한 후 박태준 명예회장은 갓 오너 자리에 오른 아들 장세주 회장의 후견인으로 자처했다. 최고 경영자들간의 우정은 회사 차원으로도 이어져 지금도 포스코와 동국제강은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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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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