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에 가격 거품이 심하다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새 약가정책이 10월부터 시행된다. 새 제도가 자리 잡으면 1년 간 수천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절약된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본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제약산업의 근간만 흔들고 말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약 싸게 사면 병원에 '장려금' 지급
16일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의 핵심은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도'의 시행이다.
보험 의약품은 출시 당시 정부가 정해준 '보험약가'란 게 있는데, 시장에선 이 가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다반사다.
예를 들면 병원은 보험약가가 1000원인 약을 제약사로부터 1000원에 구입한다. 병원은 환자에 약을 처방한 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값으로 1000원을 받는다. 병원은 진료비나 처방료 등으로 돈을 벌고, 약에서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게 정상 구조다.
하지만 병원 납품 과정에서 제약사 간 경쟁이 발생하게 되므로, 제약사는 병원에 '헐값 납품'을 제시하게 된다. 양자 간 실제 거래된 가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은 보험공단에 여전히 1000원을 청구한다. 할인된 가격만큼 리베이트가 발생하는 셈이다.
새 제도는 이 리베이트를 양성화 시키는 개념이다. 제약사의 가격경쟁을 인정하고, 거기서 할인된 금액을 병원에 장려금으로 지급한다. 대신 실제 거래된 가격을 정부에 신고토록 했다. 실제 거래가격이 900원이라면 차액 100원 중 70원은 장려금으로, 30원은 환자부담금 감면에 쓰인다. 이듬해 이 약의 보험약가는 계산공식에 따라 920원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면 보험약가는 제약사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까지 내려가고 장려금 지급도 필요 없게 된다. 약값에 거품이 '쏙' 빠지는 셈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제약사의 리베이트 지급 여력이 사라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높은 약제비 비중을 끌어내리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 설명했다.
◆리베이트 근절효과 vs 제약산업 고사 위기
리베이트 수수행위에 대한 처벌수위도 한층 높아진다. 국회 통과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제약사만 처벌토록 규정한 법을 고쳐, 의료인이나 병원도 처벌대상이 되도록 했다.
박하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약을 싸게 구매할수록 의료기관의 이윤이 커지고 환자는 약값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리베이트로 제약사를 운영하는 게 어려워지니,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체질로 변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정부는 신약개발에 투자된 자금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R&D 투자액이 일정 금액 이상인 제약사에 한해 약가인하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함께 내놨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리베이트 근절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이들의 설명은 이렇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장려금'은 받게 되면 약값이 떨어지게 되고, 언젠가 장려금 지급이 중단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제약사와 의료기관 모두 약가인하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이면계약을 통해 장려금보다 많은 금액의 리베이트가 오가는 신종수법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리베이트 금액의 증가와 약가인하의 악순환은 제약사의 수익구조를 악화시켜, 종국에 신약개발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란 게 다음 시나리오다.
한 제약사 고위 임원은 "제약사 발전이란 말은 핑계에 불과하고, 결국 제약회사의 희생을 통해 보험재정을 건전화시키겠다는 게 본 뜻이란 건 제약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에 반발해 최근 한국제약협회 회장직을 사퇴한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도 "연구개발 투자 여력이 감소, 제약사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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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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