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투자손실을 둘러싼 기업과 은행 간 본안소송 1심 첫 선고공판이 은행 측 완승으로 끝나면서 같은 이유로 소송을 낸 다른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기업 측의 야심작 '엥글 교수 카드'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F.엥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 해 12월 수출기업 도루코와 외환ㆍ우리은행 간 소송 변론기일에 도루코 측 증인으로 출석해 "키코는 처음부터 은행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주장을 폈다.
도루코를 비롯한 수출기업 17개사는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목적으로 비용을 17분의 1로 부담해 엥글 교수를 증인으로 데려왔고, 이들 기업을 포함한 상당수 기업이 그의 증언을 증거자료로 활용했다.
그만큼 기업 측이 엥글 교수에 거는 기대는 컸다. 당시 '엥글 모시기'에 참여했던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엥글 교수는 파생상품 분야의 권위자"라며 "키코의 불공정성을 설명하는 데 엥글 교수 증언보다 더 강력한 자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키코소송' 1심 첫 선고공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임성근 부장판사)는 기업 측 기대와 달리 엥글 교수 증언을 반박했다. 심지어 그의 설명을 기업 주장을 허무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이 재판부는 8일,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 재판 판결문에서 "엥글 교수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헤스턴 모델'에 따라 계산된 문제의 키코 계약 콜옵션 이론가격과 풋옵션 이론가격의 차이는 체결 당시가 아닌 IMF 관리체제(1997년 12월) 당시의 내재 변동성 수치를 사용했고, 통화스왑 금리가 아닌 이자율스왑 금리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 "이같은 결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일 뿐 시장에서의 정확한 옵션 가치를 산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점을 엥글 교수 또한 인정했다고 말했다.
'환율이 올라가면 이론상 무제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기업 주장도 엥글 교수 증언에 발목이 잡혔다. 재판부는 "기업 주장은 현물이 없는 상태에서 '투기적' 키코 계약을 맺었을 때 이론상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 기업과 같이 외화 현물이 있는 상태에서 환위험 회피를 목적으로 키코 계약을 체결한 경우 환율 상승에 따라 현물자산에서 이익을 보게 되므로 그 손실과 이익이 상쇄된다는 점은 원고 측 증인 엥글 교수도 스스로 인정했다"고 판시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엥글 교수가 파생상품 분야 석학이라는 데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그는 이론가다. 이론가는 가설을 세우는 사람인 만큼 실제 소송에서 법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오르내릴 경우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외화를 은행에 팔 수 있도록 해 기업과 은행이 환 위험을 상쇄하는 파생상품이다. 법원은 이날 또다른 수출기업 아이티씨가 같은 이유로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 또한 기각했다.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유사사건 재판은 모두 118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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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은 기자 je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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