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선영 기자]원·달러 환율이 연초부터 주루룩 떨어지고 있다.
'환율이 떨어졌으니 해외여행 좀 가보나'하는 기대감도 부각되고 있지만 외환당국으로서는 원화 강세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국내 펀더멘털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원화 강세로 이어지고는 있지만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업체의 수익 및 가격 경쟁력 악화와 무역수지 흑자폭 축소 등을 우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올초부터 역외 매도세가 눈에 띄게 외환시장을 주도하며 환율은 무려 40원 이상을 내준 상태다. 시장 일각에서는 당국의 속도조절성 개입에 대한 회의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하락 속도를 조절하면서 점차 주요레벨을 내주는 당국의 의지가 시장에서 오히려 숏 마인드를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것. 연초 1160원대에서 매도에 나섰던 역외세력이 30원~40원 이익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조차 나오고 있다.
올초 역외투자자가 원화를 아시아통화 바스켓으로 묶어 원화강세에 베팅하자 원달러 환율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글로벌 달러가 이따금씩 강세를 나타낼 때조차 반짝 조정이 이뤄졌다가도 하락 반전했다.
◆역외투자자들 "원화, 아직도 싸다"
역외투자자에 어필한 원화의 매력은 양호한 펀더멘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쌌다는 점이다. 저평가된 원화를 지지할 만한 나쁜 상황이 부각되지 않는데다 원달러 1000원대 초반까지 고평가될 여지를 노릴만다하는 점이 원화 매수를 부추긴 셈.
한 외국계 은행 딜러는 "원화롱, G3커런시 바스켓 숏으로 가면서 엔원, 유로원에 대한 크로스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달러가 지지되더라도 1000원선까지 환율 하락을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역외투자자들의 새해 포지션은 원·달러 환율 하락에 톡톡히 한 몫했다. 역외가 원·엔, 유로·원 숏(매도)으로 가져가면서 특히 원·엔 1250원위에서 매도물량이 급증했다.
또 다른 외환딜러는 "유로는 아시아중앙은행 개입에 계속 받치는 데 반해 한국 원과 일본 엔의 경우 1200원대 환율은 아직 높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원·엔 환율이 1100원~1150원 수준까지도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동시에 원·달러 환율은 1100원~1050원 정도 보면서 새로 포지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환당국, 무조건적인 액션 쉽지 않아
이처럼 강한 역외매도세에 비해 외환당국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 개입을 통한 환율 방어에는 나서고 있지만 시장 흐름에 따라 속도조절만 지속하는 분위기다. 올들어 환율 급락을 의식하고 있음에도 아직 당국은 구두개입에도 나서지 않은 상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과 달리 최근 며칠 사이 환율이 급격히 움직인 것이 특이사항"이라며 기준금리 2.0% 동결의 배경에 환율도 고려됐음을 시사했다.
한 당국관계자는 "환율이 단기간에 40원 이상 하락했지만 당국 입장에서는 이것이 실거래에 따른 것인지 핫머니에 따른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할 수 밖에 없다"며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 가능성에 투자하는 실수요에 당국이 무조건 액션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약해진 개입의지, 환율 하락 압력
외환시장 역시 당국이 고강도 환율 방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빠른 경제 회복 및 금리 인상 기대감과 함께 전세계 주식시장의 1월 효과에 따른 외국인의 국내 주식순매수, 원화 강세 등이 원달러 환율 하락의 여건을 조성해 주고 있는 점도 개입 명분을 약화시켰다.
조재성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한해 동안 사상 최고수준의 시장개입을 통해 단기간에 외환보유고를 대폭 확충했던 당국이 2010년 중에는 2009년과 같은 대규모의 공격적 시장개입을 단행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역외 세력에는 환율 하락에 베팅할 만한 유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올 한해도 얼마나 많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본이 유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국이 무턱대고 특정레벨을 방어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국은 시장개입을 꾸준히 하면서 수출업체의 불만을 무마하고 일정수준의 절상을 용인하면서 내수경기도 부양하는 정책적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정부분 역외의 원화절상 압력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한편 특정 방어선이 붕괴된 상황에서 과도한 달러를 보유한 수출업체들은 원화의 강세가 심화될 수록 추가강세를 우려하여 추격매도에 나서거나 반등시 마다 달러매도에 나서면서 시장의 하락압력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환시장참가자 "속도조절성 개입, 투기수요만 자극할 것"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듯한 개입의지는 역외투자자들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미 연초 강한 물량공세로 30원 이상 환율이 밀린 만큼 강한 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외국계은행 외환딜러는 "금리 인상없는 미국의 지표 개선은 위험자산 선호로 인한 아시아통화 강세를, 미국의 경제지표 악화는 달러약세에 따른 아시아통화 강세를 유발하면서 원화는 절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당국의 속도조절성 개입은 오히려 투기적 수요만 자극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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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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