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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친박(親朴)과 칭박(稱朴) 사이

시계아이콘01분 33초 소요

정치를 하다보면 사랑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선거운동기간 1주일을 남겨놓고 있는 경남 양산 보궐선거 현장의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가 그런 삼각관계에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초록이 물들어가는 가을밤처럼 고민이 더 깊어가는 이 老정객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총선에서 수십 명의 여당의원들을 딜레마에 빠뜨리고 말 것입니다.

꼭 집어서 말하자면 여당 의원이 ‘박근혜’란 이름 석 자를 분명히 언급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가 앞으로 2년반 동안(2012년 봄까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이 양산을 찾아 선거를 돕고 있고, 친 박근혜 네티즌들 일부가 공개적으로 “친박을 선언하면 도와주겠다”고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실정이라 당사자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당당하게 親朴으로의 계보합류를 선언하는 게 아니라 비겁하게 일시적인 친박을 가장한 稱朴으로 표를 구걸한다는 게 눈에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당선을 위한 위장귀순자들의 행태는 제법 오래된 정치 관행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려야 당선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대부분 그 길을 택했습니다. 당이 인기가 없으면 당명을 감추고, 계보가 불리하면 말을 바꿔 타고, 지역구가 탐나면 철새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꺼이 날아갔습니다.


문제는 당을 바꾸고 계보를 바꾸고 고향을 바꾸는 것을 정치인의 애교(?) 정도로 눈을 감아준 유권자들에게 있었습니다. 묵인과 방조야말로 가장과 변신을 당연한 처신으로 추인해 주었던 공범인 것입니다.


또 하나 이번 보궐선거 밥상에 한 가지 구미가 당기는 반찬이 있다면 조금 다른 형태로 변형된 메뉴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행정복합도시 ‘세종시’에 관한 출생의 시비입니다.


법이 통과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당 대표의 결단이 과연 ‘정치적인 결정이었던가 아니면 역사적인 소신이었던가’에 대한 책임소재를 일단 밥상위에다 살짝 얹어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띠를 매고 단식을 하며 반대했던 수도권 출신의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죠.


세종시 문제를 선거이슈로 꺼낼 경우 그녀의 정치적 위상에 결정적인 상처를 줄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마침 이번 보선에 걸린 충청권 1석을 통해 한번 시험을 해보자는 욕구가 일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한번은 크게 붙을 수밖에 없는 2010년 6월의 지자체 선거 최종성적표는 역시 충청권의 민심 획득에 달려 있고 사전조치로 무리수를 써가며 충청출신 총리를 갖다 앉혔는데 영 약발이 안 먹히고 있죠. 그래서 괜찮다면 세종시 이슈를 내년 선거에서 크게 써먹어 볼 속셈으로 미리 애드벌룬을 띄운 격입니다.


겉으로는 끝이 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의 후유증이 안으로는 계속 심하게 곪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총선과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거듭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번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야가 양산에서 벌이는 힘겨루기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은 자폭 직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나서주기만 하면 판세가 유리해지고 침묵하면 선거를 망치고 마는 한나라당 친박의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판세의 변화를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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