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한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편지의 제목은 ‘위기상황’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걱정도 됐습니다. 어제 저녁 국회 문광위에서 벌어진 격투기(?)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 친구에게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겼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른 열어봤습니다. 급히 도와야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경제가 위기상황이니 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일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첨부된 편지를 읽어내려 가는 순간 그가 친구들에게 주문한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광고대행사의 간부(제일기획의 허원구 국장)가 어디서 강의한 듯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었습니다.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대우의 경제레터’ 독자들이 공유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스님에게 빗을 파는 비결’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 스님에게 빗을 팔 이유는 없습니다. 스님이 빗을 사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스님과 빗을 연상한 것 자체가 엉뚱했고 엉뚱한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내걸고 영업사원을 모집했습니다. 지원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지원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스님에게 빗을 팔고 오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기간은 딱 10일이었습니다. 빗을 팔겠다고 나선 사람은 3명이었습니다.
10일 후에 실적이 공개됐습니다. 첫 번째 지원자는 1개의 빗을 팔고 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직원이었습니다. 머리가 가려운 동승에게 판매한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동원하는데 적지 않은 고뇌를 한 흔적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두 번째 지원자는 10개의 빗을 팔았습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신도들이 머리를 손질하도록 비치해 두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스님에게 한 것이죠. 그 스님은 자신에겐 빗이 필요 없지만 신도들을 위한 서비스차원에서 빗을 구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지원자가 팔고 온 빗의 숫자를 보고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무려 1000개의 빗을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공덕소 빗(공덕을 쌓는 빗)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지스님과 협상을 했습니다. 절을 찾은 사람이 향을 올리고 나면 스님들이 직접 이 빗으로 머리를 한번 빗겨준 다음, 그 빗을 참배객들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하게 한 것입니다.
공덕소 빗을 나눠준다는 입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수많은 참배객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1000개의 빗 판매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늙어가던 브랜드, 박카스의 회춘스토리였습니다. 1995년 박카스의 매출은 1000억 원이었고 , 1997년에는 15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매출실적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박카스 고객의 노후화였습니다. 고객의 대부분이 40~50대 아저씨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10년 후에까지 박카스를 마신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젊은 층을 공략하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대대적인 젊음 광고 캠페인을 벌였고 대학생 국토대장정행사도 전개했습니다. 박카스는 새로운 이미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꿈과 도전,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젊음의 드링크가 된 것이지요. 박카스의 매출은 2년만에 다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14%의 매출신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브랜드를 떠올리는 지표 역시 40대가 82%인데 비해 20대에서 87%가 나와 젊은 브랜드로 자리매김을 한 것입니다.
스님에게 빗을 파는 얘기나, 늙은 브랜드의 회춘스토리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일기획 허원구 국장의 이 얘기가 오늘 아침 의미있게 들리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2, 제3의 경제위기 조짐이 감지되는데다 불황의 아픔이 우리의 뼛속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이 구두를 수선하기 시작했다던가, 모기지 론을 갚지 못해 시름에 빠진 미국의 노인들이 구직시장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있은 청계천 잡페어에 “일자리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고령자들이 북적대는 모습에서 불안한 미래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허원구 국장은 이에 대한 해답을 발상의 전환에서 찾고 있습니다. 새로운 타깃을 보면 새로운 활로가 보인다는 것이죠.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승부를 걸면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는 얘기입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델컴퓨터 얘기도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컴퓨터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은 대학교 1학년 때 중간 판매상을 거치지 않고 맞춤형 컴퓨터를 직접 고객에게 판매한다는 직접판매방식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단돈 1000달러로 사업을 시작해 델컴퓨터를 세계 1위의 PC판매회사로 성장시켰습니다.
그가 말하는 비결은 다이렉트 경영입니다. 인터넷이란 수단이 바로 그 수단입니다. 그는 늘 하이테크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인터넷을 통해 고객 개개인과 밀착해 접촉하고 고객에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성공하는 비결이라 말합니다.
그는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고객 조립형 컴퓨터를 최종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방식을 찾아내 엄청난 부(富)를 거머쥐었습니다. 허 국장이 얘기한 ‘발상의 전환을 한 힘’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하게 한 대목입니다.
Dream is nowhere와 Dream is now here. 띄어쓰기 하나에 뜻은 정반대입니다. “꿈은 어디에도 없다”와 “꿈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뜻입니다. Dream is now here를 실현시키는 과정을 발상의 전환에서 찾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불황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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