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미국이 관세 재인상에 대한 행정적 절차에 조만간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산업계에 피해가 현실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가장 먼저 자동차 업계에 긴장감이 퍼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8개월간 관세 부담으로 7조원 넘게 이익이 줄었는데, 올해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목재·의약품과 기타 상호관세(국가별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인상 내용을 연방 관보에 공식 게재하는 문제를 두고 관계 부처 간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관세를 기존 합의보다 10%포인트를 다시 올리게 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가 떠안게 될 관세 부담은 작년보다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업계는 적극적으로 물량 밀어내기와 현지 재고 소진에 나섰던 만큼 올해에는 부담을 충당할 수 있는 체력이 상당 부분 줄어든 상황이다.
여기에 국내 생산을 줄이고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글로벌 생산 전략을 다시 수정해야 하는 등 경영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현대차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1대당 부담한 관세는 약 417만원이다. 현대차 미국 평균 판매가격이 약 3만7000달러, 54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차량 판매가의 7~8% 안팎을 관세로 부담한 셈이다. 기아도 1대당 362만원가량을 관세로 부담해야만 했다.
증권업계는 관세율이 다시 오를 경우 현대차그룹의 추가 부담이 연간 최대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증권은 현대차·기아의 연간 관세 비용이 기존 6조5000억원에서 10조8000억원으로 4조3000억원가량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올해 합산 영업이익을 18%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다올투자증권은 관세가 25%일 때 현대차·기아의 합산 손실액은 11조원(현대차 6조원·기아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메리츠증권도 "관세가 10%포인트 인상될 경우 현대차가 3조1000억원, 기아가 2조2000억원의 추가 관세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고환율 효과에도 줄어들고 있는 현대차·기아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는 각각 12조8000억원, 10조2000억원이다. 추가 관세 비용을 반영할 경우 영업이익이 10조원대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이유로 현대차·기아는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면서도 영업이익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액 186조2545억원, 영업이익 11조4679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6.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9.5% 급감하며 수익성이 악화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6.2%를 기록했다. 기아는 연결 기준 매출 114조1409억원, 영업이익 9조78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2%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28.3% 감소한 수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적극적인 컨틴전시 플랜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북미 시장에서 유연한 판매 정책을 통해 판매량을 늘리면서 불필요한 예산과 비용을 줄여 원가를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재인상은 국내 대미투자 입법의 진행 상황과 속도에 따라서 충분히 재고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