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이준경기자
"통합되면 예산도 사람도 다 광주로 쏠리는 것 아닙니까? 우리 같은 섬 동네는 들러리나 서는 것 아닌지 솔직히 겁납니다"
29일 오후 광주·전남 행정통합의 향방을 설명하는 해남·완도·진도 권역 공청회 현장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지역 소멸의 벼랑 끝에 선 서남권 주민들의 기대와 '생존'에 대한 우려, 날 선 질문이 가득했다. 이날 공청회는 행정적 당위성을 설파하는 '담론의 장'이자,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현장'이었다.
29일 해남·완도·진도서 열린 광주전남 행정통합 공청회에서 서남권 발전 방안을 설명했다. 이준경 기자
◆ 김영록·김대중…SOC·교육 특례 카드 꺼내 들어
포문은 김영록 도지사가 열었다. 김 지사는 "전남·광주 행정통합은 다시는 오지 않을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정부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서남권 주민들의 최대 가려운 곳인 '교통망'을 가장 먼저 건드렸다. "통합특별시라는 거대 지자체의 위상이 확보돼야 광주~완도 고속도로 2단계 사업과 진도 연장, 해남 철도망 같은 대형 SOC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문턱을 단숨에 넘을 수 있다"며 '통합 이퀄 SOC 대전환' 논리를 펼쳤다.
특히 해남의 RE100 산단과 솔라시도 기업도시, 완도의 해양 치유, 진도의 해상풍력 배후단지를 언급하며 "서남권 3개 군이 통합특별시의 신재생 에너지와 힐링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행정 구역 합병이 아닌, 경제적 영토 확장"이라는 것이다.
김 지사는 또 AI가 알아서 척척 농사를 짓는 스마트농업 육성지구 지정, 전남 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김산업 진흥구역 지정, 외국인 계절근로자도 지역 특성에 맞게 업종과 인원을 조정할 수 있는 고용 특례 도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대중 전남교육감은 교육행정통합의 실질적 혜택을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행정통합으로 통합교부금을 확보해 세수의 0.03%인 1조원 가량의 지원을 받게 된다"며 "학생들을 위해 사용이 가능하며 좋은 학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교사 정원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작은학교 활성화를 거듭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그동안 광주·전남의 이야기였다"며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인재가 탄생한다는 이야기였지만 현재는 그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합을 통해 학생·학부모들은 더 큰 지원을 받게 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며 "교직원 업무의 효율성과 수업에 전념하는 전문성이 확장되며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도 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청회 현장에서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김대중 전남교육감이 통합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준경 기자
◆ "농민수당 깎이나"…장밋빛 미래 대신 '당장 혜택' 급선무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장밋빛 미래 대신 '당장 내 손안의 혜택'을 물었다.
해남군 주민들은 농민수당 등 기존 복지 혜택의 사수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광주의 비대한 도시 복지 예산에 농업 예산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에 김 지사는 "특별법에 농업 예산 하한선 조항을 넣어 '기득권 보호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확언했다.
완도군에서는 '섬 특례'가 핵심 화두였다. 주민들은 섬 지역 이동권 보장을 위한 연륙·연도교 건설과 수산물 유통 구조의 광역화를 요구했다. 김 지사는 "통합 시 '섬 지역 발전 특례 조항'이 신설될 것"이라며 "신설될 '농수산물 유통공사'를 통해 완도 전복과 김이 광주라는 대도시 시장과 직접 연결될 것"이라는 구상을 내놨다.
또 다른 주민은 전남의 학생교육수당이 광주와 통합되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김 교육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며 "행정통합 대원칙은 지역별로 누리는 기존의 복지 혜택을 그대로 누리게 된다. 통합특별시 교육청이 출범하더라도 소멸지역 학생들에게 지급되던 수당은 유지될 것"이라고 답했다.
진도군 주민들은 문화적 정체성 상실을 경계했다. "광주와 통합되면 섬 문화의 정체성이 광역 도시 문화에 묻혀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김 지사는 "행정은 통합하되 각 시·군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적 정체성은 강력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완도·진도 주민들과 지자체는 행정통합의 큰 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질적 보장 장치를 주문했다. 군 단위 지자체의 자치권과 재정권을 법적으로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구체적 이행 방안 없는 통합은 공허한 약속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전남도는 이날 수렴된 3개 군의 세부 건의 사항을 토대로 오는 3월 특별법 최종안을 다듬을 계획이다. 하지만 광주와의 이견 조율,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서남권 주민들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