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기자
글로벌 빅파마 모더나가 암 백신의 상용화 로드맵을 공식화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암 백신이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의료 현장에 도입될 치료 전략으로 부상하자 독자적인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모더나는 최근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자사 암 백신에 대해 미국식품의약국(FDA) 가속 승인 신청 계획을 밝혔다. 미국 머크(MSD)와 공동 개발 중인 맞춤형 암 백신 'mRNA-4157(V940)'이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재발 또는 사망 위험을 49% 낮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암 백신은 암세포의 특징인 항원을 면역계에 인식시켜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특히 면역항암제와 병용할 경우 치료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면역치료 전략으로 평가된다. 모더나의 이번 임상 성과는 암 백신이 개념 검증 단계를 넘어 실제 상업화 가능성을 갖췄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암 백신 상용화가 가시화되면서 독자적인 암 백신 기술을 보유한 한국 바이오 기업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신라젠은 차세대 항암바이러스 플랫폼 'SJ-600 시리즈'를 통해 암 백신 분야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SJ-600은 치료 목적에 따라 다양한 항원을 유연하게 탑재할 수 있는 전달 플랫폼이다. 바이러스 표면에 면역계의 보체 반응을 억제하는 단백질 'CD55'를 발현시켜 혈액 내 중화항체의 공격을 회피하도록 했다. 정맥 투여와 반복 투여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탑재 가능한 유전자의 크기 제약이 적어 환자 맞춤형 항원 등 다양한 유전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점도 암 백신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동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앞서 한국세포생물학회 학술대회에서 치료 목적에 따라 다양한 항원을 유연하게 탑재해 송달할 수 있는 '범용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임상 단계에 진입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HLB의 미국 자회사 이뮤노믹 테라퓨틱스는 최근 자가증폭 RNA(saRNA) 기반 암 백신 후보물질 'ITI-5000'으로 FDA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다. ITI-5000은 암 항원을 면역세포 내부의 세포 소화기관(리소좀)으로 전달해 면역 반응을 조율하는 'CD4? T세포'를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CD8? T세포와 B세포까지 연쇄적으로 자극하는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향후 재발 위험이 높은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병용 임상도 진행할 계획이다.
애스톤사이언스는 항원 유전 정보를 직접 전달하는 플라스미드 DNA(pDNA) 기반 치료용 암 백신 'AST-301'의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이다. 대만식약청(TFDA) 승인을 받아 HER2 발현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이 이뤄지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임상 1상에서 장기 전체생존율(OS)과 무진행생존율(PFS)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확보했다. HER2 위암은 수술 후 재발을 억제할 표준 치료제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 백신 상용화 경쟁의 관건이 항원 자체보다 전달 효율과 반복 적용 가능성을 갖춘 플랫폼 기술에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암 백신 상용화가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갖춘 항원 전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다양한 모달리티 기반 플랫폼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기술적 가치도 재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