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이란 당국이 최근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상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위 참가자 다수가 총상을 입고도 방치됐으며, 이를 치료하려던 의사가 체포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20일 연합뉴스는 노르웨이 기반 인권단체 이란 인권(IHR) 발표를 인용해 시위가 격화했던 지난 7일 이란 남서부 시라즈 일대에서 약 1000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돼 아델아바드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 수감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급격한 경제 악화다. 이란 화폐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물가가 치솟았고, 시민들은 "먹고 살기 어렵다"며 거리로 나섰다. 신화통신연합뉴스
IHR이 인용한 한 소식통은 "수감자 상당수가 산탄총 등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16∼18세 청소년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10대 청소년 호세인 아마드자데는 양쪽 눈을 실명하고 두개골에 다수의 탄환이 박힌 상태였으며, 16세인 쿠로시 파테미와 오미드 파라하니는 허리 아래에 총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교도소 의료진에게 부상자 치료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이는 과다출혈로 사망하도록 방치하려는 의도였다"며 "이를 거부하고 치료를 시도한 의사 자파르자데가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IHR은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 이후 지금까지 시위 참여자 최소 342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해왔다. 그러나 이 단체는 "이 수치는 목격자 증언과 자체 추정치보다도 낮다"며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 역시 시위 관련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국가 폭력 통계가 조직적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IHR은 "지난 5년간 이란 당국이 발표한 사형 집행 건수도 실제 확인된 규모의 약 12%에 불과했다"며 "충분한 자료가 확보될 때까지 일일 사망자 통계 발표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정보 차단도 강화하고 있다. dpa통신은 이란 국영방송을 인용해 이란 당국이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기 약 4만 대를 정지시켰다고 20일 보도했다. 다만 실제 단말기를 압수한 것인지, 원격으로 비활성화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호세인 아프신 이란 과학기술지식경제 담당 부통령은 "이번 주 내 인터넷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실적으로는 외부와의 연결을 계속 제한하는 모습이다.
앞서 이란 당국은 지난달 28일 경제난 항의 시위가 반정부 구호로 확산하자, 이달 8일 인터넷과 통신을 전면 차단하고 유혈 진압에 나섰다. 그런데도 일부 스타링크 이용자들을 통해 시위 현장의 참상이 외부에 전해졌다. TASS연합뉴스
인터넷 검열 감시단체 필터워치(Filterwatch)는 최근 이란 정부가 국제 인터넷 접속 권한을 정부가 승인한 소수에게만 허용하는 체계를 영구화하려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일반 시민은 글로벌 인터넷과 단절된 국내용 국가망만 사용할 수 있다. 최대 2000만 명 생계 위협 이란에서는 차량 호출 서비스 '스냅(Snapp)'과 배달 앱 등 온라인 플랫폼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가 최대 2천만 명,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장기적인 인터넷 차단은 민생 악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이란 당국은 지난달 28일 경제난 항의 시위가 반정부 구호로 확산하자, 이달 8일 인터넷과 통신을 전면 차단하고 유혈 진압에 나섰다. 그런데도 일부 스타링크 이용자들을 통해 시위 현장의 참상이 외부에 전해졌다. 최근에는 해커들이 이란 국영방송 위성 신호를 가로채, 팔레비 왕조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가 "군은 국민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호소하는 영상을 송출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역시 스타링크 이용자들이 SNS에 공유하며 알려졌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급격한 경제 악화다. 이란 화폐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물가가 치솟았고, 시민들은 "먹고 살기 어렵다"며 거리로 나섰다. 미국과의 장기적 갈등에 따른 경제 제재로 석유 수출과 외화 유입이 막힌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아얀데 은행 파산이 결정타가 됐다. 이 은행은 약 50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문을 닫았고, 수많은 예금자가 예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여기에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 최대 30배 이상 차이 나면서 수입이 사실상 마비됐고, 물가 상승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급격한 경제 악화다. 이란 화폐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물가가 치솟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초기에는 경제난에 대한 항의였던 시위가 반정부·반체제 시위로 확산한 배경에는 이란 특유의 정치 구조가 있다. 이란에는 대통령과 의회가 있지만, 실질적인 최고 권력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2022년 히잡 착용 강요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가 여성 인권과 자유를 중심으로 했다면, 이번 시위는 이념을 넘어 생존의 문제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와 BBC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이란 시위를 "체제의 경제 운영 능력을 묻는 시위"로 규정했다.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거리 집회는 줄어들었지만, 경제난과 체제 불신이라는 불만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