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기자
현재 이란의 체제 위기를 예고한 가장 뚜렷한 조짐은 아얀데 은행 파산 사태였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분석했다.
WSJ는 아얀데 은행의 몰락이 경제 붕괴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결국 반정부 시위를 촉발해 이슬람 공화국 수립 50여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정치·사회적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아얀데 은행은 지난해 10월에 대출 부실로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의 손실이 쌓인 상태에서 청산됐다.
지난 9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영상 캡처. AP연합뉴스
이번 위기는 이란 입장에서 최악의 시점에 터졌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받았던 이른바 '12일 전쟁'에서 자국민을 방어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정권 신뢰가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여기에 핵 프로그램 협상에서 양보를 거부해 제재 완화 기대가 낮아졌고, 지난해 11월에는 핵 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재차 공격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받았지만 뚜렷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WSJ는 아얀데 은행 부실이 2018년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 복원 이후 가속화된 금융시스템 위기의 한 단면이며 그 핵심부에서 터진 사건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중동 및 중앙아시아국 부국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 아드난 마자레이는 "아얀데 은행이 정권 유력 인사들과 연줄이 튼튼한 곳이었다"며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점점 심각해져 온 이란 정권의 정통성 상실을 이 은행 부실 사태가 더욱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경제 지표도 악화 일로를 걸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란 리알화 가치는 달러 대비 84% 폭락했고, 식품 가격 상승률은 72%에 달했다. 미국 버지니아텍 소속 경제학자 자바드 살레히-이스파하니는 작년에 이란에서 빠져나간 '자본 탈출' 규모를 100억달러(14조8000억원)에서 200억달러(29조5000억원)로 추산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출한 예산안에서 긴축 기조를 시도했지만 반발이 거셌다. 정부는 이후 1인당 1000만리알(약 1만3500원)의 지원금을 매달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가격 통제에 불응하면 엄벌하겠다고 경고했으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현재 이란에서는 테헤란에서 수백 명 규모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생 안정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위가 본격화된 이후 전국 수십 개 도시로 확산됐으며, 정부가 탄압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최근 2주간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