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강나훔기자
연합뉴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에 관한 미국 측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에서 미국을 방문한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사안을 분리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국내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시작된 이슈가 미국 내에서 '미 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 프레임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동시에 방미 기간 광범위한 설득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다.
여 본부장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본질은 대규모 정보 유출과 이후 대처 미흡에 있다"며 "통상이나 외교 문제와 혼합해 해석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관련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받은 적은 없다"고 전제한 뒤 "한국 정부가 특정 기업을 타깃하거나 차별적으로 조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쿠팡 한국 법인 지분은 미국 상장 모회사 쿠팡Inc.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쿠팡Inc. 의결권의 70% 이상은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 언론과 싱크탱크, 의원 보좌진 라인에서는 한국 국회의 대응이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사전 규제의 신호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 본부장의 발언은 이러한 인식을 차단하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여 본부장은 한국 국회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과 관련해선 "미국 측이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책·입법 의도를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 상·하원 의원들과 디지털 산업 협회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이번 방미 기간 폭넓게 아웃리치를 진행해 한국 정부의 정확한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이 법안이 사실상 미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로 기능할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여 본부장의 면담 대상에는 한국 규제를 '반미 디지털 규제'라고 비판한 공화당 대럴 아이사 하원의원도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아이사 의원은 최근 언론 기고에서 한국 정부와 국회를 겨냥해 "미국 기업 차별"이라고 직격한 바 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도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입법은 소비자 보호와 시장 공정성 확보라는 국내 규범적 목적에 기반한 것이지만, 미국 측에서는 디지털 무역·서비스 시장 장벽의 맥락에서 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논의의 프레임이 충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USTR과 미 의회는 최근 디지털 무역을 '제조업과 동등한 비관세 장벽 영역'으로 규정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한미가 비관세 장벽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일정이 한 차례 연기된 데 대해 "USTR과 일정과 의제를 긴밀히 조율 중"이라며 "준비되는 대로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심 의제는 톱 레벨과 실무 레벨에서 상시적으로 소통하며 건설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미 간 상호 관세율을 15%로 낮춘 합의에 대해 미국 대법원 판결이 조만간 나온다는 전망에 대해선 "결과에 변수가 많아 예단하기 어렵다"며 "미 정부, 로펌, 통상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이번 방미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여 본부장은 방미 기간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포함한 미 의회 인사들과 산업계 로비그룹 관계자들을 연쇄적으로 만난 뒤 15일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우리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미국 측에 반영되고 설득될 수 있도록 국익을 중심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