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파국이론과 경제위기

'트럼프 경기 침체' 아직 안 일어나
변화 임계점 다다르고 있을수도

지난해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불러올 것이라던 경제위기, 이른바 '트럼프 경기 침체(Trump recession)'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가 인플레이션 급등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미국이 일방적 보호무역정책을 발표하던 당시, 금융시장은 급락했고,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나타내는 변동성지수(VIX)는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이상한 일도 아닌 게 관세 부과는 일단 수입자의 직접 부담이 되고, 생산비를 뛰게 만들어 물가를 올려놓는다. 당연히 실물경제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그려졌다.

하지만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2024년 말 3% 미만에서 1935년 이후 최고치인 17% 가까운 수준으로 급등한 뒤에도 미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적어도 지표상으로 미국 경제는 문제가 없다. 작년 3분기에도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연간 성장률 기준으로 4.3%를 기록했고 12월 기준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2.7% 수준이었다. 성장률은 2023년 3분기(4.7%) 이후 2년 만의 최고치고 물가상승률은 예측치를 밑돈다. 설명은 가능하다. 우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처음에 예고했던 수준으로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한때 무역 상대국에 무조건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트럼프는 정작 시행은 조금씩 미루더니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는 선에서 합의를 끌어내고는 관세를 낮췄다. 처음부터 무리했던 탓도 있지만,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보다는 협상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관세에 보복 조치를 단행했던 나라는 사실상 중국뿐이었다. 예상보다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스스로 많이 흡수하기도 했다. 관세 부과 전의 재고 대량 비축이나 수입선 다변화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AI가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AI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은 기대의 영역이지만, 일단 현재 세계 경제의 활력이 AI에 집중된 투자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기가 없었다고 해서 위기의 가능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시장에는 관세 부과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전문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올해 세계 경제도 작년과 비슷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AI의 진화 방향, 미국의 관세 정책, 미·중 관계 변화, 모두 예측이 어렵다. 국제무역에 대한 오랜 통념은 폐기됐고 세계는 미국에서 경제정책의 거의 모든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기존 패턴에 기반한 위험 측정은 큰 의미가 없다. 파국 이론(破局理論·Catastrophe theory)은 아주 작은 변화가 갑작스럽고 극적인 상황의 전환을 발생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변화의 이유는 쌓이고 있어도 정작 변화가 관측되는 것은 임계점 이후다. 흔들리는 찻잔 속의 액체는 갑자기 넘쳐 쏟아지기 전까지는 찻잔을 넘지 않고, 전기회로는 마지막 한 전기부품을 끼우고 나서야 갑자기 동작하기 시작한다.

올해 우리나라는 작년보다는 조금 나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고 미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생산성 개선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 경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국채의 신뢰 급락은 세계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 미국을 포함해 주요국의 재정적자는 이미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시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세계적인 무역전쟁도, 경기 침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김상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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