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경제가 3분기 연율 4%대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며 예상보다 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성과가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소기업과의 격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이익 증가에 힘입어 대기업들은 실적 개선과 고용 확대를 지속하는 반면, 소기업들은 관세 부담과 고물가로 위축된 소비 심리 속에서 경영 압박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이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민간 노동시장 조사업체 ADP의 보고서를 인용해 최근 6개월 간 직원 수 50명 미만의 민간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고용을 줄였다고 전했다. 특히 11월 한 달 동안 이들 소기업에서 약 12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직원 수 50~499명 규모의 중견기업에서는 약 5만1000명, 직원 수 500명 이상 대기업에서는 약 3만9000명의 고용이 각각 늘어나 기업 규모에 따른 고용 흐름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3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연율 4.3%에 달하는 등 경기 전반은 호조를 보였지만, 고용 확대의 온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집중된 셈이다.
실적에서도 기업 간 양극화는 뚜렷하다. 금융정보업체 LSEG에 따르면 S&P500에 속한 대형 상장사들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했다. 아마존과 엔비디아 등 자본력이 탄탄한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 흐름이 두드러졌다.
소기업 현장에서는 체감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아이오와주 시더래피즈에 본사를 둔 팝콘 브랜드 '얼모스트 페이머스 팝콘'을 운영하는 시드니 리크호프 대표는 "예년 같으면 연말 성수기를 대비해 10~15명을 채용했겠지만, 올해는 4~5명에 그쳤다"며 "소비자들이 지출에 훨씬 신중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사는 연말연시에 연간 매출의 약 60%를 올리는 구조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소기업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다. 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이익률과 현금 보유 여력이 낮아 관세 인상이나 인건비 상승, 이민 노동력 감소 같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가 부족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강화된 관세 정책은 소기업에 더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 간 양극화는 최근 소비자 계층 간 분화와도 맞물려 심화되는 양상이다. 증시 상승으로 자산이 늘어난 고소득층은 소비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반면, 중·저소득층은 고물가 부담 속에 지출을 줄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11월 공개한 경기 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 "전반적인 소비 지출은 줄어들었지만, 고가품 중심의 소매 지출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기업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대기업 근로자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기업 부진은 저소득층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견조한 소비와 높은 성장률 지표와 달리, 미국 경제 내부에서는 소비자 계층과 기업 규모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어 경제 체질이 마냥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겉으로 드러난 경기 호조 지표에 상당 부분 착시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소비 시장에서 나타난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 간 격차, 이른바 'K자형 경제' 구조가 기업 부문에서도 나타나며 경제 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연구소의 테일러 볼리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 경제와 기업 경제 모두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