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함' 지원 사격에도 韓 탈락…88년 전통 스웨덴 방산업체 비결[기업연구소]

(18)1937년 설립 스웨덴 방산기업 사브(Saab)
매출액 약 17% R&D 투자
혁신 아이디어 선별 후 실질적 사업으로 연계

편집자주우리나라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 규모와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는 각각 세계 2위(2022년)와 4위(2020년)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년부터 10년간 연평균 6.1%에서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0.5%로 크게 낮아졌다. 혁신 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인 '혁신기업'의 생산성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면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산업계가 혁신 DNA를 재생할 수 있도록 해외 유명 기업들이 앞서 일군 혁신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침체된 한국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마중물은 혁신기업이 될 것이다.

"혁신은 해결책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아이디어입니다. 연구·개발(R&D)을 통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헨릭 론(Henrik Lonn) 사브코리아 대표이사는 최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가진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사브의 혁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 방위산업 선도 기업인 사브는 혁신을 '학습과 관리 및 측정 가능한 것(something)'이라고 정의한다. 혁신은 소수의 천재만이 하는 일이 아니며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를 누군가가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론 대표이사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가 혼재해 있지만,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선택해 개발하는 것은 차이를 만든다"면서 "사브는 혁신 인재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경영진과 다양한 기술 지원 부서가 함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특허와 라이센싱 등 법적 지원도 제공해 혁신을 실질적인 제품과 사업으로 연계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혁신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브는 R&D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왔다. 2024년 기준 사브 매출액은 약 638억크로나(약 9조4171억원)로 이중 약 17%(약 1조5631억원)가 R&D에 투자됐다. 국내 동종업계와 비교해보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LIG넥스원 등의 R&D 투자 비용은 매출액의 1~2%대에 불과하다. 사브는 혁신연구소 5곳도 운영 중이다.

최근 폴란드 정부가 신형 잠수함 사업자로 사브를 선정하면서 한국 기업들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항공기술, 다이나믹스, 감시정찰, 잠수기술 등 주요 4대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사브. 한국에서 4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론 대표이사에게 혁신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헨릭 론 사브코리아 대표이사가 사브에서 개발한 경량 단발 엔진 초음속 다목적 전투기 그리펜(Gripen)모형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펜은 경량화와 첨단 전자장비, 네트워크 중심 전술이 특징이다. 윤동주 기자

-폴란드 신형 잠수함 관련 경쟁에서 사브가 선택받은 이유.

▲아직 계약 협상이 최종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스웨덴이 경쟁에서 이겼지만, 이것이 전부다. 최종 계약 협상은 내년 1분기다. 경쟁은 치열했고 한화오션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다만, 이번 승리는 잠수함 기술력과 운영 측면에서 기인했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A26 블레킹급 잠수함은 최신 기술과 혁신이 반영돼 있으며 특히 깊이가 얕은 발트해 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 잠수함 전문가들에 따르면 온도 변화 등 발트해 환경이 매우 까다로운데 A26은 이에 잘 맞게 조정된 잠수함이다. 운영 측면에서는 유럽 국가 간 강력한 협력이 있었고 폴란드 정부는 스웨덴 정부, 군대 그리고 북대서양기구(NATO) 커뮤니티 내에서의 협력 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유는.

▲방위산업 분야는 항상 최첨단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공격자와 방어자 간 '치킨게임'과 같다. 최신 기술이 없으면 상대방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사브는 공중, 지상, 해상 그리고 잠수함 영역에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기술 선도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가장 큰 동력이다. 최근 드론 사용, 방위체계에 인공지능(AI) 도입, 신기술과 새로운 군 운용 방식 등 해당 부문 투자를 더욱 늘리고 있다.

-포트폴리오 강화, 사업 다각화 이유는.

▲한국 방위산업을 보면 LIG넥스원은 미사일과 센서에 강점이 있고, 한화오션은 조선 분야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전투기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각자 전문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브는 매우 폭넓은 영역을 다룬다. 사브는 '솔루션 프로바이저(solution provider)'로서 전투기, 레이더, 전자전 센서, 미사일, 통신시스템 등 다양한 하부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통합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사브의 레이더 사업 분야는 해군함정, 지상공중방어체계, 전투기 등 다양한 용도에 맞는 레이더를 개발해 최신 기술에 적용하고 이를 각 분야에 맞게 구현하는 기반을 마련해왔다. 생산량을 늘릴수록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비용이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 같은 일종의 '기술의 경제'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매출 기반을 넓히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사브가 지난 2월 칼스크로나 조선소에서 재진수한 고틀란드급 잠수함 'HMS 할란드호'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화 개조 작업을 통해 HMS 할란드호의 작전 수명은 15~20년 더 연장됐다. 스웨덴 해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고틀란드급 잠수함이다. 사브 홈페이지

-사브의 혁신연구소는 '빠르게 실패하라'가 모토다.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사브 그룹 경영진 신임 멤버로 마커스 반트(Marcus Wandt)가 선임됐는데, 이전 사브의 최고혁신책임자(CIO)였다. 실패를 미뤄선 안 되며 아이디어 단계에서 빠르게 검토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연구개발로 진전시켜야 한다. 불필요한 아이디어는 조기에 배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과 관리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혁신은 특정 연구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마케팅·영업·고객 요구 등 조직의 모든 부분에서 실현될 수 있다.

-한국과의 협력은 어떤 성과를 냈나.

▲방위산업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동종 업계 안에서 협력하기도 한다. 한국법인은 2002년 설립됐다. 올해 9월 사브는 지상발사형소구형폭탄(GLSDB)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만든 천무다연장로켓(MLRS) 발사대에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GLSDB는 사브가 보잉과 공동 개발한 제품이기도 하다. 이번 협력은 사브가 지향하는 '윈윈'의 좋은 사례다. 협력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든다.

기획취재부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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