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정기자
정부가 코스닥시장의 체질개선에 나서면서 코스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코스닥 시가총액 1위인 알테오젠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이전상장을 확정하고 준비 중이다. 그동안 코스닥 우량주들이 줄줄이 코스닥시장을 등지고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면서 코스닥의 성장도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코스닥 신뢰+혁신 제고 방안'이 코스닥 우량주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 기업 수는 54개에 달한다. 네이버(NAVER), 카카오, 셀트리온, 엔씨소프트, 아시아나항공, 포스코DX, 엘앤에프 등 굵직한 기업들이 모두 코스닥에서 짐을 싸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했다.
현재 코스닥 1위 기업인 알테오젠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알테오젠은 지난 8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코스닥시장 조건부 상장폐지 및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 승인의 건'을 의결했다.
22일 기준 알테오젠의 시총은 23조5158억원으로 코스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7%에 달한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던 알테오젠의 이전은 코스닥시장에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상장한 기업 중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는 첫 사례기 때문이다. 알테오젠은 2014년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8년 적자를 거친 후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시총 1위까지 오른 알테오젠은 코스닥시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혀왔다. 공모 당시 시총 약 1400억원에서 10년 만에 약 170배 성장했다.
알테오젠뿐 아니라 시총 2위 에코프로비엠도 이전상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에코프로비엠은 이전상장을 추진했다가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2월 상장 신청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향후 경영실적 개선 확인 후 이전상장을 다시 신청하겠다고 밝혔었고 최근 실적이 개선됨에 따라 이전상장 재추진설이 힘을 얻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의 시총은 15조원대로 알테오젠과 에코프로비엠이 모두 빠져나갈 경우 코스닥 시총은 8%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 우량 기업들이 코스닥시장으로 들어와 몸집을 불린 후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가면서 코스닥의 2부 시장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을 코스닥으로 유인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대형 종목들이 대거 이탈하면 기관들이 코스닥에 와서 어떤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겠냐"라고 지적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등이 코스닥에 남아 있었다면 진작에 '천스닥'을 넘어 1200선까지 올라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대어급 기업의 경우에도 코스닥시장보다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 2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LG씨엔에스의 경우 코스닥시장에서 과거부터 눈독 들였던 대어였다. 2012년 거래소는 코스닥의 우량 기술주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히며 LG씨엔에스, 삼성SDS(삼성에스디에스) 등을 유치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삼성SDS는 2014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 LG씨엔에스도 유가증권시장을 선택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스피와 코스닥은 평판 자체가 다르다"면서 "외국인의 자금 유입, 기업의 자금 조달 시 평가받는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치 제고 측면에서 코스닥보다 코스피가 유리한 게 100% 기정사실이다 보니 기업들이 코스닥보다 코스피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기업들이 떠나는 상황에서 한계 기업들은 퇴출되지 않고 좀비처럼 남아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코스닥의 한계기업 비중은 23.7%로 유가증권시장 10.9%에 비해 12.8%포인트나 높았다. 유가증권시장은 2016년부터 2024년 3분기까지 2.5%포인트 증가했지만 코스닥은 같은 기간 17.1%포인트나 늘었다.
코스닥에서 기업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교수는 "거래소의 지배구조가 바뀌기 전엔 백약이 무효하다"면서 "현 시스템상에서는 코스닥은 코스피를 가기 위한 통로 역할을 하는 영원한 마이너리그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좀비기업 퇴출과 관련해서는 주주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좀비기업들을 퇴출한다고 하는데 그 기업의 주주들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솔루션이 필요하다"면서 "퇴출 대상 기업들이 재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세컨더리 마켓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플랫폼을 만든다거나 퇴출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이 선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