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2026년 기술 경쟁의 중심에는 예상보다 훨씬 근본적인 요소가 놓여 있다. 바로 연산 인프라, 즉 연산 자원(Compute)이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실행할 연산 능력과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산업이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2025~2026년을 거치며 분명해졌다.
최근 전 세계가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에 나서는 이유도 단순한 반도체 수요 확대 때문만은 아니다. 생성형 AI의 학습과 추론에는 대규모 병렬 연산이 필수적이며, 이는 연산 자원의 총량과 안정성이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산업계와 학계 모두 연산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전력망을 AI 경쟁의 핵심 조건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GPU 중심 구조만으로는 폭증하는 연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된 신경망처리장치(NPU)와 주문형 반도체(ASIC), 이를 수용할 데이터센터와 전력 공급 능력이 새로운 경쟁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산 인프라는 이제 특정 부품을 넘어 산업 전반의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산업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다. 신약 개발과 배터리 연구, 기후 모델링 등 계산 집약적 분야에서는 연산 자원의 규모와 효율에 따라 연구 속도와 범위가 결정된다. 계산 능력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기술 격차로 이어지며,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여기에 '행동하는 AI'가 결합하면서 연산 인프라의 의미는 한 단계 더 확장되고 있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기술 총괄은 "AI는 Brain이지만, 실제 가치를 만드는 것은 Brain이 조직의 Body와 연결될 때"라고 설명한다. 사무 환경에서 Body는 메일·결재·업무관리 시스템 등 조직의 정보기술(IT) 인프라다.
2023년 11월 오픈한 네이버의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IDC) 세종시 집현동 각 세종의 서버실 전경. 네이버클라우드 제공.
AI가 고도화될수록 지시 방식도 변한다. 세부 작업 방식을 나열하기보다 목표와 맥락을 제시하면 AI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산 자원 확보는 성능 경쟁을 넘어 조직 운영 방식과 산업 구조를 바꾸는 조건이 되고 있다.
연산 인프라 경쟁은 곧 전력망 경쟁으로 이어진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데이터센터는 국가 전략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전경. SK 제공
다만 연산 인프라가 확대될수록 책임 문제도 함께 커진다. 성 총괄은 "기술적으로 오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최종 책임을 AI가 질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는 연산 인프라 경쟁이 속도나 정확도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검증, 운영 체계까지 포함한 경쟁임을 보여준다.
최운호 서강대 교수 역시 기술이 도시와 국가 시스템의 운영 방식으로 깊이 스며들수록, 표준과 신뢰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연산 인프라 확충 자체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연산 인프라는 이제 보이지 않는 설비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2026년은 이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해다. AI 시대의 승패는 얼마나 많은 연산 자원을 확보했느냐가 아니라, 그 연산 자원을 얼마나 안정적이고 책임 있게 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