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서 한번씩 마시는 '이 음료'…무려 100년이 넘은 '첫 사랑의 맛' [日요일日문화]

1919년 개발된 유산균 음료…'국민음료'로 자리잡아
1930년대 경성에도 들어와…한국 소설에도 등장

일본 여행 가서 다들 한 번씩 사마시는 음료가 있다면 '칼피스(カルピス)' 아닐까 싶습니다. 술집에서 술과 탄산을 섞어 '칼피스 사와'로도 판매하고, 편의점에서도 탄산이 들어간 칼피스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해 선보이고 있는데요. 칼피스는 탄산이 없지만, 탄산수와 섞었을 때 맛이 우리나라의 '밀키스'나 '암바사'와 비슷하다고 '일본 밀키스' 등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죠.

사실 이 칼피스, 1919년 개발돼 100년이 넘은 유산균 음료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쓰인 소설에도 등장한 음료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일본의 국민 음료 칼피스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칼피스 홍보 이미지. '국민음료'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엄마와 아이가 등장한다. 칼피스.

유목민 마시던 발효유가 원조

칼피스의 뿌리는 몽골 유목민들이 마시던 유음료에서 나왔습니다. 칼피스를 만든 미시마 카이운은 원래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었고, 업무차 1908년 내몽고를 방문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피로가 누적돼 컨디션도 나빠지고 소화도 잘 안 됐었다고 해요. 이때 현지 유목민들이 가축의 젖을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음료를 권합니다. 매일 빠지지 않고 마셨더니 속도 편해지고 컨디션도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이 경험을 "나빴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고통받던 불면증도 나았다. 몸과 머리가 개운하고 체중도 늘어났다. 마치 불로장생의 영약이라도 만난 것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이 체험을 통해 미시마는 유산균의 힘을 믿게 됩니다. 그렇게 귀국 후 독자적으로 유산균이 들어가는 음료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게 되죠.

처음에는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크림을 개발합니다. 1916년 '다이고미'라는 이름으로 상품을 내놨는데요. 일본어로 '진정한 맛', '최고의 경지에 이른 맛'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말하는 유제품입니다. 우유를 발효시키면 다섯 단계에 걸쳐서 맛이 나온다고 하는데요, 가장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 것을 '제호'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이 제호의 맛을 다이고미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제호가 무엇인데 천상이 맛인지는 그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각에서는 계속 끓여 정제한 '기(Ghee) 버터'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있답니다.

1919년 발매 당시 칼피스의 모습. 지금과는 사뭇 다른 디자인이다. 칼피스.

이듬해에는 이 다이고미의 제조공장에서 남은 탈지유를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제품 '다이고소'를 출시하기도 하는데요. 이 맛을 좀 더 손보고 일본인에게 부족했던 칼슘을 첨가하자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음료가 탄생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호를 산스크리트어로 '사르피르 만다(sarpir-manda)'라고 부르고, 그 전 단계의 유제품을 '사르피스(sarpirs)'라고 부르는데요. 칼슘과 사르피스를 합쳐 우리가 아는 '칼피스(calpis)'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됩니다.

현재 칼피스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요. 첫 번째로 원유에서 지방을 제거해 탈지유를 만든 뒤 독자적인 '칼피스균'을 사용해 1차 발효합니다. 그러면 유산균 때문에 신맛이 난다고 해요. 이후 설탕을 더해 2차 발효합니다. 이 과정에서 효모가 작용하면서 칼피스만의 향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끝나고 다른 향 등을 더하면 우리가 아는 칼피스가 탄생합니다. 1919년 7월 7일 시장에 선보이게 되죠.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칼피스 원액. 라쿠텐.

금기 깨는 캐치프레이즈…지진 구호 도우며 국민 음료로

칼피스는 전에 없던 맛, 그리고 몸에도 좋은 음료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독특한 캐치프레이즈로 더 인기를 끌었는데요. 발매 1년 뒤 미시마의 후배가 '칼피스의 맛은 달콤하고 잊지 못할 맛이다. 이것을 첫사랑의 맛이라고 홍보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시기 '사랑을 공개석상에서 말한다'라는 게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았다고 해요. 미시마도 "아이들도 마시는 음료에 사랑의 맛은 좀 그렇지 않느냐"라고 했는데, 후배는 다시 "아이가 물어보면 첫사랑의 맛이 칼피스의 맛이라고 하면 되죠"라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칼피스는 '첫사랑의 맛'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첫사랑의 맛'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홍보한 당시 칼피스의 광고. 칼피스.

당시 사회적 파장은 컸다고 합니다. 오사카에서는 경찰이 '연애 표현은 삼가야 한다'며 포스터 홍보를 자제할 것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사이에서 자유로움과 낭만주의가 확산하고 있을 때였죠. 일부의 질타 속에서도 '첫사랑의 맛'은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소위 '모던걸', '모던보이' 들의 음료로 자리 잡게 됐죠.

그러던 중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는데요. 당시 식수 확보가 되지 않은 데다가, 늦여름 더위도 있어 칼피스 공장은 물에 얼음과 칼피스를 섞어 피난민들에게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올라가게 됐다고 해요.

이후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집마다 칼피스를 구비해놓는 게 문화처럼 정착됐다고 합니다. 상온 보관이 가능한 원액이라 어느 집이나 부엌 찬장에 칼피스를 뒀다고 해요. 심지어 일본에서는 국민의 99.7%가 칼피스를 먹어본 적이 있다는 시장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요. 여하튼 칼피스는 현재 맛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유산균과 이를 발효시키는 '스타터'를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계속 배양한다고 합니다. 씨 간장처럼 계속 추가해 만드는 셈이네요.

우리나라 소설에도 등장…경성 찻집에도 들어와

우리나라에도 이 칼피스가 들어왔는데, 1930년 경성에서는 찻집들이 칼피스를 팔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이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우연히 동창을 만나 카페로 들어간 구보 씨가 '나는 가루삐스(칼피스)를 주문하겠다. 당신도 같은 것을 시키지 그러느냐'라는 동창의 제안을 거절하고 홍차나 커피로 하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외설적인 색깔이라 싫고 입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당시 쓴 커피가 입에 맞지 않으면 칼피스를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시중에 출시된 다양한 칼피스 음료군. 칼피스.

생각해보면 칼피스가 우리나라에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에 출시됐고, 관동대지진 때 국민적 성원을 받았으니 우리나라에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당시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또 당시 일본에서 느꼈을 거리감 등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구보 씨가 칼피스를 마다한 것에는 이런 묘한 거부감이 스며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사랑의 맛'을 내세운 국민 음료지만, 다른 기억과 감정도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겠지요. 긴 역사를 이어온 음료인 만큼 나름의 시간과 맥락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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