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기자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예외적으로 주52시간 외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AI 업계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활용도가 떨어진 특별연장근로제도는 3년 연속 인가 건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21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특별연장근로는 2022년 9119건에서 2023년 6424건, 지난해 6389건으로 매년 감소했다. 올해 10월 현재 5979건을 기록 중으로 업무가 많지 않은 연말 시즌을 감안하면 올해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하는 기업도 매년 줄었다. 2022년 2938곳이었던 기업 수는 올해 1745개로 감소했다.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는 기업은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특별연장근로제는 ▲재해·재난 ▲인명·안전 ▲돌발상황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 등 총 5가지 사유로 신청이 가능하다. 특별연장근로 업종별 인가 현황은 제조업(41.8%)이 가장 많고 이어 공공행정(22.3%), 기타(16.1%), 운수 및 창고업(11.2%) 순이다.
통상 기업이 사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사유는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 등이다. 그러나 AI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기업에서 이를 사용한 사례는 거의 없다.
특별연장근로제에서 업무량 폭증 사유로 한 차례 승인을 받으면 최대 4주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그러나 AI 스타트업계는 소규모 인원으로 3개월, 6개월 단위 프로젝트 업무가 주된 형태여서 해당 제도가 근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타트업 특성상 3~5일 이내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하는 긴박한 경우도 발생하는데 정부의 인허가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스타트업계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매번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연장근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매우 특이한 사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AI 업계가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특별연장근로제 신청 사유는 연구개발이다. 연구개발 사유로 특별연장근로제를 쓰게 되면 1회 최대 인가 기간은 3개월이며 3개월을 초과하는 경우 심사를 거쳐 활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한 특별연장근로 신청 대상에는 AI 개발 업무가 포함돼 있지 않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일본 수출규제품목 등에 관련해서만 연구개발 목적의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가능하다. 업계의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AI 연구개발도 반도체와 같이 특별연장근로 연구개발을 허용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AI 분야는 인재를 단기간에 양성하고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훈련된 근로자들이 탄력적으로 연장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글로벌 경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경총 관계자는 "AI는 우리가 선도적인 기술력을 갖춘 국가가 아닌 후발주자여서 하루라도 빨리 연구 몰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하지 않으면 앞선 기업들을 따라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12일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오피스텔에서 'K-혁신' 브라운백미팅에 참여해 판교 IT개발자 2030 직장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5.12 김현민 기자
해외 주요국은 AI 업종의 연장근로를 보다 유연하게 허용한다. 경총에 따르면 일본은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 노동부 신고만으로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독일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비상 상황이 있을 경우 별도 요건 없이 연장근로를 실시할 수 있다. 프랑스도 기간이 한정된 작업, 일시적 업무증가 등 사유로 근로감독관 승인 하에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미국은 특별연장근로에 따른 시간제한이 아예 없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업계의 요구 사항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현 정부 기조에 따라 건강권 보호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무량이 폭증한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우선 신청할 수 있으며 여의치 않으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선택적 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를 활용해보길 권유한다"면서 "일터혁신컨설팅도 지원하고 있으니 상담을 통해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AI 업계는 주52시간을 넘어 달릴 준비가 돼 있는데,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행 제도는 이런 현실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