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준기자
염다연기자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의 3조원대 규모의 설탕값 담합은 '대표·총괄급' 경영진 단계까지 논의가 오간 뒤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담합 논의 과정에서 제당 3사는 주 공급처인 '롯데칠성음료'에 대한 협상 방법 등을 논의하고 롯데 측의 반응을 공유하면서 설탕 가격 인상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제당 3사가 짜고 롯데칠성음료 등 거래처를 속여 폭리를 취한 셈이다.
5일 제당 3사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첫 설탕값 담합 논의는 2021년 2월께 서울 강남구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CJ제일제당 기업 간 거래(B2B) 식품소재사업부장 송모씨, 삼양사 영업상무(PU)장 전모씨 등 제당사 임원급은 모임을 갖고 원당가·환율 상승을 거론하며 "설탕 판매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모았다.
같은 해 4월1일에는 '2021년 5월경 40원/㎏ 인상' 수준에 합의했고, 팀장급은 별도 모임과 유선 연락으로 롯데칠성음료 등을 포함한 주요 거래처별 협상 방법을 논의하고 반응을 공유하며 합의를 실행한 것으로 검찰은 공소장에서 밝혔다.
검찰은 담합이 '임원급 합의→팀장급 실행→상향 보고·승인 구조'와 같은 순차 공모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2021년 하반기에도 같은 흐름이 반복됐다. 2021년 6월18일 임원급 모임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2021년 9월경 80원/㎏ 인상' 수준으로 인상 여부·시기·폭을 맞추고, 팀장급이 거래처 협상 전략을 공유하며 실행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팀장급의 협상 경과가 상급자에게 보고되고 승인되는 방식으로 공모가 이어졌다고 본다.
특히 제당 3사의 대표이사·총괄급이 직접 만나 설탕 가격을 "빨리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공감대를 만들고, 주 공급처인 롯데칠성음료에 먼저 통보해 '분위기를 잡자'는 협상 방향까지 논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윗선 회동'은 2022년 1월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구체화된다. 삼양사 전 대표이사 최모씨와 CJ제일제당 한국식품총괄을 맡았던 전 고위 임원 김모씨 등은 모임에서 "원료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영업수익을 개선하려면 설탕 가격을 빨리 올려야 한다", "설탕 가격 인상을 위해서는 롯데칠성음료 등 대형 실수요처에 통보해서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제당 3사의 담합 논의는 2022년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당시 삼양사 대표이사였던 최씨가 2022년 4월18일 손익 실적 점검 회의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가격 인상에 최선을 다할 것", "고객은 추가 가격 인상을 수용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해당 지시가 이메일로 공유됐다는 내용이다. 이후 7월 임원급 모임, 8월 "삼양사가 먼저 (인상) 작업을 시작하면 CJ제일제당도 이에 맞춰 따라간다"는 취지의 연락 정황, 10월 팀장급의 거래처별 협상 실행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설탕 가격 '인상'뿐 아니라 '인하'를 하면서도 담합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정부의 설탕 가격 인하 요청과 롯데칠성음료 등 거래처의 인하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제당 3사가 "가격을 인하하지 말고 버텨볼 것"이라는 취지로 임원급 합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의 이후 인하 시점·폭을 공동으로 결정해 지난해 7월1일 50원/㎏ 인하를 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설탕 가격의 인하가 늦어지자 지난해 6월 음료 6개 제품에 대해서 가격을 6.9% 인상했다.
또 롯데칠성음료가 지난 4월 환율가 통관가의 추이 등을 고려해 설탕 가격 50원/㎏을 인하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협조하지 않으면 입찰"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하자,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공동 대응을 논의해 롯데칠성음료에 한해 30원/kg 인하를 합의·실행한 흐름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검찰은 제당 3사가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지난 2021년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설탕 가격 변동 여부와 폭,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해 3조2715억원 규모의 담합을 벌였다고 봤다. 검찰은 최씨와 김씨를 비롯해 삼양사·CJ제일제당 법인 및 양사 임직원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