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전 세계가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체중 감량을 넘어 경제와 사회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종로구 한 약국에 '뱃살약 입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28일 업계에 따르면 위고비와 젭바운드라는 브랜드명으로 잘 알려진 비만치료제 성분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는 생성된 호르몬을 모방해 식욕을 억제하고 혈당을 조절해 제2형 당뇨병과 비만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약물이다. 비만은 주요 사망 원인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위험 요소인데 이러한 신약의 영향은 새로운 산업 분야에까지 확대됐다.
비만치료제를 상용화한 미국과 덴마크는 비만치료제가 경제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의학저널 자마 헬스 포럼(Jama Health Forum)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메디케어가 GLP-1 치료제를 보장할 경우, 향후 10년 동안 퇴직자 건강 증진 프로그램에 따른 순 지출만 477억 달러(약 66조1694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위고비 제조업체인 노보 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자국 전체 GDP(국내총생산)를 넘어섰으며, 체중 감량 의약품 산업이 여전히 덴마크 경제에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GLP-1 계열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당뇨·MASH(대사성 지방간염), 심혈관 질환, 알츠하이머 등으로 적응증 확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약물 혁신이 일자리 창출과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일라이 릴리의 비만·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 일라이 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등 글로벌 빅파마들도 GLP-1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의 경우 반드시 '퍼스트 인 클래스(계열내 최초)'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후속 약물이 부작용을 줄이고 효능·편의성을 개선할 수 있어 경쟁은 오히려 약물 발전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소비패턴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GLP-1을 복용한 가구의 식료품 지출은 6개월 내 평균 5.3% 감소했고, 고소득층은 8.2%까지 줄었다. 특히 베이커리·과자류 소비가 급감하면서 FMCG(일용소비재) 기업들이 '고단백·저칼로리' 라인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나아가 알코올·도박 중독 감소 효과까지 관찰되며 주류업계도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 중이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고가에다 많은 국가에서 보험 적용이 제한돼 저소득층은 사실상 비만치료제 사용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비만율이 높은 저소득층일수록 약물 접근성이 낮아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유층은 날씬해지고 빈곤층은 더 비만해지는 '헬스 갭(health gap·건강 격차)'이 사회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