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공장의 죽음]③위험한 기계 둘러싼 죽음의 공통점

안전 시스템 마련해놓고도 관리 소홀

편집자주이재명 대통령의 불호령대로 야간 초과 근무를 없애 노동강도를 낮추면 모든 게 해결될까. 반복되는 SPC그룹 공장의 끼임 사망 사고 핵심은 관리되지 못한 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위험 감지 시 기계를 멈출 수 없었다는 것에 있다. 아시아경제는 3건의 사망 사고 과정과 기계를 재구성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을 톺아봤다.

SPC그룹은 빵 만드는 기계 대부분을 주문 제작 방식으로 들여온다. 기계 설비 투자 심의가 끝나면 구매를 위한 입찰 과정을 거친다. 생산 라인에 깔릴 기계가 선정되면 생산센터(공장)와 안전부서는 기계 설치 작업과 함께 안전 점검을 실시한다. 모든 작업 공간에 기계 비상정지 버튼이 설치돼 있는지, 안전장치가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별도의 점검 시스템도 운영한다. SPC그룹이 공장 기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7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화물차가 공장을 나서고 있다. 강진형 기자

하지만 공장에서 3명이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시스템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①기계 가동 중 개입 ②안전장치 미설치·고장 ③손 닿지 않는 비상정지 버튼 등 정황은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제지하지 않는 허술한 관리에서 비롯된 인재 사고라는 점을 가리킨다.

<i>아시아경제는 사고 기계의 위험성을 보여주기 위한 3D 그래픽을 제작했습니다. 사건을 재현하는 일부 그래픽과 텍스트는 불편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i>

①움직이는 기계에 몸을 밀어 넣다

올해 5월19일 오전 3시 사고가 발생한 경기 시흥시 SPC삼립 공장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가동 모습을 3D로 재현했다. 양씨는 윤활유를 뿌리기 위해 가동 중인 기계 하단부로 들어갔다. 기계 하단부에는 비상정지 버튼이 없었다.

SPC 기계 끼임 사망 사고 피해자들은 움직이는 기계에 몸을 밀어 넣으면서 근무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올해 5월19일 시흥시 SPC삼립 공장에서 근무하던 양모씨(55·여)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하단부에 들어가서 윤활유를 뿌리다가 상체가 끼여서 사망했다. 움직이고 있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안에 직접 들어가 작업을 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참고기사: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산업안전공단)의 '컨베이어 안전에 관한 기술지침'에는 청소, 급유 등 보수유지 작업을 할 때 컨베이어 운전을 멈추도록 돼 있다.

하지만 양씨를 비롯해 SPC삼립 공장 근로자들은 기계 운전이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컨베이어 하단부에 자주 들어가 작업했다.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주변에 있는 박스와 하단부에 덧댄 아크릴판은 SPC 근로자들이 지목한 증거들이다.

사고 현장과 같은 기계로 생산라인을 갖춘 평택시 SPL 공장 직원 A씨(56·남)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가 오래되면 덜덜거리면서 빵이 아래로 떨어진다"며 "일반적으로 박스는 생산라인에 필요 없는 도구지만, 떨어진 빵을 주워 담기 위한 목적으로 박스를 기계 주변에 배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크릴판에 대해서도 "평소 기계 안으로 왔다 갔다 하는 위치를 표시하고 나름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8월8일 성남시 샤니 공장에서 '반죽 리프트'에 끼여 사망한 고모씨(55·여)를 비롯한 동료 직원 역시 별다른 제지 없이 가동 중인 기계 주변에서 업무를 진행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업안전규칙) 제92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수송기계(반죽 리프트에 해당) 등의 정비·청소·교체·조정 작업을 할 때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일단 기계 작동을 멈춰야 한다. 사고 기계를 다루던 2명의 노동자는 반죽 분할량을 바꾸기 위한 리프트 노즐 교체 작업 중에도 불구하고 기계를 가동하고 있었다.

샤니는 반죽 리프트 기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로부터 받은 당시 샤니의 안전작업 표준서에 따르면 샤니는 사고 기계의 위험요인으로 리프트 상승 및 하강 중 기계 끼임 및 배합볼 낙하로 인한 위험을 지목했다.

2022년 10월15일 평택시 SPL 공장에서 사망한 박모씨(23·여)도 가동 중인 '소스 배합기' 안에 손을 넣어 뭉친 소스를 풀어주다 변을 당했다. 이는 가공된 식품을 꺼내는 등 위험 부분에 노동자가 손가락을 가까이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기계 운전을 정지하도록 정하고 있는 산업안전공단의 '식품가공용기계의 안전 작업에 관한 기술지침'을 벗어난다. 해당 지침은 사고가 발생하기 10년 전인 2012년 11월 공표됐다.

②위급 상황 막는 안전장치는 없었다

2023년 8월8일 오후 12시33분 경기 성남시 샤니 공장의 '반죽 리프트'에서 작업하다가 발생한 사고를 3D로 재현했다. 반죽량 조정 등 작업 중임에도 기계 주변으로 작업자들은 접근할 수 있었다. 경고음도 울리지 않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피치 못하게 작업자들이 규정을 어기고 가동 중인 기계에 접근했더라도 이들의 위험한 상황을 막거나 알릴 수 있는 장치는 사고 현장에 없었다. 반죽 리프트는 하강 시 경고음이 울려 작업자가 위험을 알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샤니 성남공장에 있는 반죽 리프트의 경고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고씨가 배합볼이 내려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대로 끼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2023년 8월16일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샤니 성남공장을 방문해 사고 원인 등을 살폈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누군가 수동으로 껐는지 추가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소스 배합기 역시 혼합용기에 덮개를 달아서 손을 집어넣지 못하도록 방지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덮개를 열어야 할 경우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도록 인터록을 필수적으로 달아야 한다. 인터록이란 덮개가 열리는 등 특정 조건에서 기계를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장치다. 하지만 박씨가 일하던 소스 배합기에도 인터록은 없었다. 지난 1월 강동석 당시 SPL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수원지법 평택지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SPL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 자체 주간점검에서 소스 배합기의 인터록 설비를 검토하는 등 사고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산업안전규칙 93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안전장치를 해체하거나 사용을 정지해선 안 된다.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 강진형 기자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의 경우 '인터록'이 달린 펜스를 설치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펜스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제동 장치도 존재한다. A씨는 "SPL에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주변에 인터록이 있다"며 "위급한 상황일 때 그 줄을 당기면 기계 가동은 멈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시흥소방서에서 공개한 SPC삼립 공장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주변에는 인터록이 달린 펜스 대신 아크릴판만 있었다.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펜스까지 설치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이라며 "컨베이어 벨트의 사이마다 손가락이 끼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씌워놓는 것 역시 원칙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③손 닿지 않는 비상정지 버튼

공장 노동자는 근무 중 위험한 상황에서 기계의 비상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규칙 제88조는 사업주가 기계 동력차단장치를 노동자가 작업 위치를 이동하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2년 10월14일 경기 평택시 SPL 공장의 '소스 배합기'에서 발생한 사고를 3D로 재현했다. 비상정지 버튼은 우측 제어판에 있었지만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소스 배합기에서 질식사한 박씨는 오른팔이 회전 날개에 걸리면서 상체가 혼합용기 안으로 들어갔다. 박씨의 키는 160㎝다. 이 키의 여성 팔 길이는 보통 55㎝ 정도다. 하지만 혼합용기 우측 끝에서 비상정지 버튼까지의 거리는 108㎝다. 이동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누를 수 없는 위치다.

고씨 역시 마찬가지다. 반죽 리프트의 비상정지 버튼은 상승·하강 버튼과 함께 배합볼의 좌측 기둥에 달린 제어판에 몰려 있다. 반죽 리프트의 노즐 교체 작업 중에는 노동자가 기둥 뒤에 서 있어야 해 시야에서 제어판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사고 당시 고씨는 팔을 올려 반죽 리프트의 노즐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체와 머리는 모두 비상정지 버튼과 반대편인 우측을 향했다. 시야에서 안 보이는 비상정지 버튼을 더 누르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상임대표를 맡았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작성한 'SPC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검토'. 2023년 8월 샤니 성남공장에서 고모씨(55·여)가 반죽 리프트에 끼여 사망했다. 강진형 기자

최근 사망 사고가 발생한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역시 하단부에 사람이 들어갈 일이 없게끔 설계돼 하단부에는 비상정지 버튼이 없었다. 노동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단부에 들어가는 작업 절차가 있었다면 비상정지 버튼도 기계 하단부에 설치했어야 한다. 기계를 멈출 수 있는 비상정지 버튼은 컨베이어 벨트 하단부에서 누를 수 없는 위치의 제어판에 있었다.

SPC의 기계 끼임 사고의 더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경제 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asiae.co.kr/visual-news/article/2025091015165318961

기획취재부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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