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전진영기자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 강진형 기자
<i>아시아경제는 사고 기계의 위험성을 보여주기 위한 3D 그래픽을 제작했습니다. 사건을 재현하는 일부 그래픽과 텍스트는 불편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i>
SPC그룹 산하 24개 공장에는 노동자가 잠깐 한눈파는 순간 몸을 빨아들이고 짓이기는 무서운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다. 사고 공장 노동자, 경찰, 산업·공학·의학 전문가 증언과 분석을 토대로 3건의 기계 끼임 사망 사고 과정을 재구성했다.
올해 5월18일 오후 7시 양모씨(55·여)는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SPC삼립 공장에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 야간조 근무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양씨는 크림빵 라인 포장반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라는 기계를 관리했다. 원기둥 형태의 기계는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나선형 형태로 배열된 컨베이어 벨트가 올라간다. 빵은 35~40분 동안 돌면서 식는다. 오랜 시간 빵을 식혀야 하는 만큼 컨베이어 벨트는 천천히 움직인다고 한다. 다 식은 빵은 2층 출구로 나가서 포장된다.
"끼익 끼익." 시계는 어느새 오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양씨의 귀에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확보한 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소리를 '삐걱거리는 소리'로 단순 묘사했지만 직원들은 오래된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에서 나는 소음이 사실상 귀를 찢는 듯한 쇠 긁는 소리라고 전한다. 문제가 생긴 기계에서는 무시하고 일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소음이 난다.
윤활유 자동분사장치가 컨베이어 벨트에 기름을 뿌려 작동을 원활하게 하고 쇠 긁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당시 이 기계의 자동분사장치는 고장이 나 있었다.
양모씨(55·여)는 올해 5월19일 오전 3시 경기 시흥시 SPC삼립 공장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에서 작업하다가 사망했다. 양씨가 윤활유를 뿌리기 위해 기계 하단부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3D로 재현했다. 스튜디오 우타
양씨는 으레 그렇듯 윤활유를 들고 가동 중인 기계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갔다. 가장 아래층 컨베이어 벨트와 바닥 간 간격은 약 80㎝다. 국가기술표준원이 2020~2021년 조사를 진행한 '8차 한국인인체치수조사'에 따르면 50대 여성의 평균 키는 157㎝, 앉은키는 86㎝다. 개인차는 있지만, 양씨의 키가 50대 여성 평균 수준이었다면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기계 아래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단부 공간도 일하기엔 좁다. 중심축과 컨베이어 벨트 사이 공간은 여성 한 명 쭈그려 앉을 만큼만 있다.
올해 5월19일 오전 3시 사고가 발생한 경기 시흥시 SPC삼립 공장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가동 모습을 3D로 재현했다. 양씨는 윤활유를 뿌리기 위해 가동 중인 기계 하단부로 들어갔다. 기계 하단부에는 비상정지 버튼이 없었다. 스튜디오 우타
양씨는 어두운 기계 아래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더 먼 곳에 윤활유를 뿌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순간 손이 컨베이어 벨트에 걸렸다.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던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해서 양씨의 몸을 끌고 갔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의 상체는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의 기둥과 컨베이어 벨트 사이로 들어갔다. 기둥과 벨트 간 간격은 약 10㎝에 불과하다. 좁은 공간에 양씨의 손부터 시작해 팔, 어깨, 가슴 순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도 일부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당한 양씨를 보고 동료 직원이 급하게 기계를 껐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구두 소견에 따르면 양씨는 그래픽에 표시된 것처럼 팔뿐만 아니라 몸통과 머리 등 다발성 골절로 사망했다.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양씨의 팔만 들어갔다면 충분히 살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기계의 힘에 의해 양씨의 가슴까지 따라 들어가면서 압박과 골절이 일어난 게 사망으로 이어졌다. 조항주 의정부성모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면 팔을 당기면서 신경이 손상돼 팔을 못 쓰게 되는 경우는 있다"며 "몸통이 얼마나 빨려 들어갔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구두 소견에 따르면 올해 5월19일 오전 3시 경기 시흥시 SPC삼립 공장의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에서 작업하다가 사망한 양모씨(55·여)는 그래픽에 표시된 것처럼 팔뿐만 아니라 몸통과 머리 등 다발성 골절로 인해 사망했다. 스튜디오 우타
2023년 8월8일 고모씨(55·여)는 오전 7시 출근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고씨의 담당 업무는 경기 성남시 샤니 공장의 치즈케이크 생산 라인에서 반죽을 나누는 것이다. 그는 2013년 5월1일 입사해 근속연수가 10년3개월에 달하는 소위 '베테랑'이다.
고씨가 만지는 기계는 '반죽 리프트'다. 반죽 재료를 배합볼에 넣어 리프트에 끼우면 리프트가 최고 230㎝까지 볼을 들어 올려 분할기에 반죽을 붓는다. 그러면 분할기가 컨베이어 벨트에 작은 빵 모양으로 반죽을 짜준다. 자동 운전 상태에서 기계의 하강 버튼을 누르면 머리 위에 있던 배합볼이 20초 만에 바닥까지 내려온다. 초당 11.5㎝씩 움직이는 꼴이다. 배합볼이 내려오면 리프트와 분할기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간격으로 밀착된다.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고모씨(55·여)는 2023년 8월8일 오후 12시33분 경기 성남시 샤니 공장의 '반죽 리프트'에서 작업하다가 사망했다. 고씨가 반죽 분할량을 조절하기 위해 팔을 뻗어 노즐을 조정하는 모습을 3D로 재현했다. 스튜디오 우타
고씨는 오후 12시33분께 동료 작업자 이모씨(55·여)와 함께 반죽 리프트를 작동시켜 반죽이 담긴 배합볼을 올렸다. 이후 고씨는 반죽 분할량을 바꾸기 위해 복부를 분할기 쪽에 붙여서 팔을 뻗었다. 그의 몸은 자연스럽게 리프트와 분할기 사이에 위치했다.
고씨가 아직 작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씨가 이동하면서 누른 리프트 하강 스위치는 자동 상태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려왔다. 현장 근로자들은 "업무가 바쁠 때 일단 기계 스위치를 눌러놓고 다른 일을 보러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설명한다.
2023년 8월8일 오후 12시33분 경기 성남시 샤니 공장의 '반죽 리프트'에서 작업하다가 발생한 사고를 3D로 재현했다. 반죽량 조정 등 작업 중임에도 기계 주변으로 작업자들은 접근할 수 있었다. 경고음도 울리지 않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스튜디오 우타
배합볼은 그대로 하강하면서 고씨를 향했다. 고씨는 1초에 11.5㎝씩 무섭게 내려오는 배합볼을 보지 못했다. 이와 함께 기둥 뒤에 가려진 비상정지 스위치도 못 봤다. 그는 그대로 배합볼을 감싸고 있는 이송장치와 분할기 사이에 끼였다. 빠르게 내려오는 기계 특성상, 몸이 닿고 나서 피하긴 어렵다. 리프트와 분할기 사이 좁은 공간에 상체가 끼이면서 압박이 가해졌다. 고씨는 심정지 상태에 놓였다.
소방당국은 곧바로 신고받고 고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고씨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12분. 사고가 발생하고 30여분 만이다. 고씨는 호흡과 맥박이 돌아온 상태로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2023년 8월8일 오후 12시33분 경기 성남시 샤니 공장의 '반죽 리프트'에서 작업하다가 사망한 고모씨(55·여)는 복부 압박으로 인한 장 파열로 인해 사망했다. 스튜디오 우타
고씨의 사망 원인은 복부 압박으로 인한 장 파열이다. 위 그래픽의 빨간색 부분에 압박이 가해졌다. 의학 전문가들은 웬만한 충격으로는 장 파열로 인한 사망에 이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사망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궁인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옆에서 봤을 때 상체 너비가 절반 이하로 납작해질 때까지 눌려야만 장 파열이 발생한다"며 "일상에서 복부 압박으로 인한 장 파열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기계에 현장 근로자들은 매일 노출돼 있었던 셈이다.
2022년 10월14일 경기 평택시 SPL 공장의 야간조였던 박모씨(23·여)는 오후 7시50분께 출근했다. 박씨는 특성화고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제빵사를 꿈꾼 사회초년생이었다.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별일 없으면 박씨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박씨는 약 1년간 소스 배합작업을 담당하면서 '소스 배합기'를 주로 사용했다. 가로 240㎝, 높이 105㎝ 기계의 좌측 혼합용기 안에서는 소스를 섞어주는 날개가 1분당 18회씩 회전한다. 우측에는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조작 버튼과 비상정지 스위치가 있다. 혼합용기와 비상정지 스위치 간 거리는 약 108㎝다.
2022년 10월14일 경기 평택시 SPL 공장의 '소스 배합기'에서 발생한 사고를 3D로 재현했다. 비상정지 버튼은 우측 제어판에 있었지만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스튜디오 우타
퇴근을 두 시간도 채 남기지 않고 박씨는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기 위해 소스 배합기를 사용했다. 그는 마요네즈 80㎏을 투입하고 회전 날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소스 배합기가 노후한 탓에 소스가 잘 섞이지 않고 한쪽에서 뭉쳤다. 박씨는 뚜껑이 닫혀있지 않은 기계에 손을 넣어 뭉친 소스를 직접 풀어줬다.
오전 6시18분께 박씨의 오른팔이 소스 배합기 날개에 걸리고 만다. 팔이 걸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퇴근을 앞두고 많은 작업량을 무리하게 마무리하다가 미처 날개를 피하지 못했거나, 새벽 근무로 집중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다.
스튜디오 우타
박씨는 끌려들어 가지 않기 위해 오른팔에 힘을 줬다. 하지만 소스 배합기 날개는 15㎏ 무게의 딱딱한 버터를 한순간에 뭉갤 정도로 힘이 강하다. 여성의 힘으로 버텨낼 수 없는 수준이다. 힘을 준 반작용으로 그의 몸은 오히려 180도 뒤집히고 만다. 그러면서 상체가 소스로 가득 찬 혼합용기 안에 빠지고 말았다.
작업반장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구조를 요청했다. 공무팀을 비롯한 다른 근무자들은 달려와서 소스를 퍼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구조를 시도한 시점은 오전 6시27분께다. 오전 6시44분 119 구조대가 투입됐지만 박씨는 현장에서 사망한 상태였다. 사고가 발생하고 119 구조대가 오기까지 약 26분이 걸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에 따르면 2022년 10월14일 경기 평택시 SPL 공장의 '소스 배합기'에서 작업하다가 사망한 박모씨(23·여)는 기도 폐색성 질식으로 사망했다. 폐 내부에서 이물질이 발견됐고 머리와 뇌 손상은 없었다. 스튜디오 우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에 따르면 박씨의 사망 원인은 기도 폐색성 질식이다. 그래픽의 파란색 부분은 질식, 빨간색은 오른팔 골절을 의미한다. 기도 폐색성 질식은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로 인해 기도가 막힌 것을 의미한다. 기관지와 폐 내부에 이물질이 발견됐고 머리와 뇌 손상은 없었다. 통상 질식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6분이다. 하지만 1분이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게 의학 전문가의 소견이다. 즉, 박씨가 스스로 위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1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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